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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당시삼백수 정선 40. 山居秋暝 산 속의 가을 저녁 王維 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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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수형

당시삼백수 정선 40. 山居秋暝 산 속의 가을 저녁 

왕유 王維


빈 산에 막 비 내린 뒤

저녁 무렵 날씨는 가을기운 완연하다.

밝은 달빛은 솔밭 사이로 비추고

맑은 샘물은 돌 위로 흐른다.


대숲 시끄럽더니 빨래하던 처녀들 돌아오고

연꽃 흔들리더니 고기잡이 배 내려간다.

향기로운 봄풀은 제멋대로 시들어가도

나는 홀로 (산중에) 머무를 만하네.


空山新雨後, 天氣晩來秋.

明月松間照, 淸泉石上流.

竹喧歸浣女, 蓮動下漁舟.

隨意春芳歇, 王孫自可留.


이 시는 왕유가 망천(輞川)에서 거주하던 시기에 지어졌다. 그림 같은 산수를 시로 그려내어 시인의 고결한 정회를 기탁하고 있다.

❖暝(명): 날이 저물다. 황혼.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질 무렵.

❖隨意(수의): 제멋대로. 마음대로.

❖春芳(춘방): 봄의 향기. 봄철 향기로운 풀.

❖歇(헐): 시들다.

❖王孫(왕손):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 “왕손은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데, 봄풀이 돋아나 무성하도다. ...... 왕손이여 돌아오라, 산중에는 오래 머물러서는 안되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 ...... 王孫兮歸來, 山中兮不可以久留.” 원래 은사를 불러 산에서 나오게 하는 의미이다. 왕유는 그 의미를 반대로 써서, 봄풀이 시들어가도 아름다운 가을에 왕손(王孫: 왕유 자신을 가리킴)은 스스로 산중에 남아 거주할 만하다고 하였다.


왕유(王維): 701-761 

자는 마힐(摩詰), 조적(祖籍)은 태원 기현(太原祁縣: 지금의 산서성 祁縣)이다. 상원(上元) 원년(760)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어, 세상에서는 “왕우승(王右丞)”이라고 불렀다. 성당(盛唐) 산수전원시파의 대표로 인정되고 있다.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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