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45. 漢江臨眺
한강에서 굽어보며
王維 왕유.
초(楚) 땅의 변경인 양양은 세 상수(湘水)와닿아있고
형문산(荊門山)엔 장강의 많은 지류가 굽이쳐 모여 있다.
강물은 하늘 밖 저 너머로 아득히 흐르고
먼 산의 경치는 보일 듯 말 듯.
성곽과 촌락은 포구의 파도 위에 떠 있고
출렁대는 파도 위엔 먼 하늘이 흔들거린다.
양양(襄陽) 땅 이 좋은 풍광에서
머물러 산옹(山翁)과 함께 술 취하고 싶어라.
楚塞三湘接, 荊門九派通.
江流天地外, 山色有無中.
郡邑浮前浦, 波瀾動遠空.
襄陽好風日, 留醉與山翁.
주석
한강(漢江)에서 조망하며 보이는 그대로의 경치를 묘사하고 그곳에 머물러 벗과 함께 술에 취하고자 한다. 그림 그리는 법을 시로 이입시킨 자연시 중의 명시이다. 이 시는 개원(開元) 28년(740), 왕유가 지남선(知南選)으로 부임해 가는 도중 양양(襄陽)을 지날 때 지었다.
❖漢江臨眺(한강 임조): 어떤 판본에는 “한강에서 배띠우고(漢江臨汎)”라 했다. 漢江(한강): 한수(漢水). 장강(長江)의 가장 긴 지류로 호북성에 있다.
❖臨眺(임조):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다.
❖楚塞(초새):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의 변경. 양양(襄陽)일대는 옛 초나라의 북쪽경계이므로, ‘초새(楚塞)’라고 칭하였다. 양양 일대의 한수 유역.
❖三湘(삼상): 상수(湘水)가 이수(漓水)와 합해서 이상(漓湘), 증수(蒸水)와 합하여 증상(蒸湘), 소수(瀟水)와 합쳐서 소상(瀟湘)이라 하며, 통칭 삼상(三湘)이라 한다. 모두 호남성 내에 있다.
❖荊門(형문): 형문산(荊門山). 지금의 호북성 의도현(宜都縣) 북쪽, 장강의 남쪽에 있는데, 지세가 험하다. 마치 큰 문과 같은 모양이다.
❖九派(구파): 장강의 9개의 지류. 많은 물줄기. 지금의 강서성 구강시(九江市) 부근의 일단의 장강, 이 일대는 9개의 지류가 흐른다. 후에 장강(長江)을 가리키기도 했다. 전설에 우(禹)임금이 치수(治水)를 할 때 형문산(荊門山)을 파서 아홉 물줄기[九派]를 소통시켰다고 한다.
❖山色有無中(산색유무중): (멀리 형문산의) 산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다.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린다.
❖郡邑(군읍): 성읍(城邑). 양양성(襄陽城)을 가리킨다.
❖襄陽(양양): 호북성에 있는 지명으로, 한수(漢水) 북쪽의 도시. 지금은 번성(樊城)과 합쳐져 양번시(襄樊市)로 되었다.
❖風日(풍일): 풍광. 풍경.
❖山翁(산옹): 진(晉)의 산간(山簡)을 가리킨다. 산간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의 아들. 진서(晉書), 「산간전(山簡傳)」에 의하면, 산간(山簡)이 양양에 진수(鎭守: 군대를 주둔시켜 요처를 지키다)할 때, 음주에 탐닉하여 항상 그 지방 호족인 습씨(習氏) 집안의 아름다운 정원인 고양지(高洋池)에 가서 술을 마셨는데, 마실 때마다 번번이 취하였다고 한다. 이 구의 의미는 양양의 이 좋은 풍경에, 이곳에 머물러 산간처럼 유쾌하게 술을 마시고 취하고 싶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산옹(山翁)’을 ‘맹호연’이라고도 한다.
저자.
왕유(王維): 701-761
자는 마힐(摩詰), 조적(祖籍)은 태원 기현(太原祁縣: 지금의 산서성 祁縣)이다. 상원(上元) 원년(760)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어, 세상에서는 “왕우승(王右丞)”이라고 불렀다. 성당(盛唐) 산수전원시파의 대표로 인정되고 있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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