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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당시삼백수 정선 50. 秦中寄遠上人 진중(秦中)에서 원(遠) 스님에게 부치다 孟浩然 맹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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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당시삼백수 정선 50. 秦中寄遠上人  진중(秦中)에서 원(遠) 스님에게 부치다  

孟浩然 맹호연 


항상 한 언덕에 살고 싶었는데

세 갈래 작은 길의 정원도 마련할 돈 없어 괴롭다.

이 곳 북쪽 땅은 내가 바라는 곳 아니요

동림사(東林寺)의 내 스승을 그리워한다.


몸에 지닌 돈은 생활비로 다 써버렸고

씩씩한 뜻은 해가 갈수록 쇠약해져 간다.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 불어

매미 소리 들으니 슬픔만 더해 간다.


一丘常欲臥, 三徑苦無資.

北土非吾願, 東林懷我師.

黃金燃桂盡, 壯志逐年衰.

日夕涼風至, 聞蟬但益悲.


개원(開元) 17년(729) 가을에 지었다. 작자가 장안(長安)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가을이 오자 원상인(遠上人)에게 부친 시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실망과 산림에 은거하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상인(上人)은 승려를 높이는 말이다.

❖詩題(시제): 어떤 판본에는 “秦中感秋寄遠上人”이라 했다.

❖秦中(진중): 당나라의 도읍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一丘(일구): 언덕 하나. 은자의 거처를 가리킨다.

❖三徑(삼경): 도연명(陶淵明), 「귀거래사(歸去來辭)」, “삼경은 황폐하려 하는데, 소나무와 국화는 오히려 남아있다(三徑就荒, 松菊猶存).” 󰡔삼보결록(三輔決錄)󰡕: 서한(西漢) 말(末)에 왕망(王莽)이 권력을 전횡하자, 장후(蔣詡)는 관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장후는 자가 원경이다. 집 안 대나무 아래에다 세 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오직 양중과 구중만이 그를 따라 노닐었다(蔣詡, 字元卿, 舍中竹下開三徑, 惟羊仲求仲從之遊).” 여기서 삼경(三徑)은 은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은자의 정원.

❖北土(북토): 북쪽 땅인데, 여기서는 진중(秦中: 長安)을 가리킨다. 이 구에서는 수도에 남아서 벼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東林(동림): 동림사(東林寺). 진(晉)의 스님 혜원(慧遠)이 거주하던 곳. 여기서는 원상인(遠上人)을 가리킨다. 혜원과 원상인의 이름이 같기에 여기서는 혜원으로 원상인을 비유하였다. 전해 오길, 저명한 스님 혜원은 처음에 여산(廬山) 서림사(西林寺)에 거처하였는데, 불도(佛道)를 묻는 사람이 많아지자, 자사(刺史) 환이(桓伊)가 산의 동쪽에다 그를 위해 동림사를 세웠다고 한다. 2009년 10월, 역자는 여산의 동림사를 탐방하였다.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로 유명한 개울도 절의 바로 앞에 있는데 그 개울은 크기가 도랑물과 같이 작아 약간 실망했다.

그 전설고사는 다음과 같다. ‘동림사의 고승 혜원(慧遠)은 엄격한 수행승으로서 30년 동안 호계라는 개울을 건너 산문(山門)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어느날 시인 도연명(陶淵明)과 도사 육수정(陸修靜)이 혜원을 찾아와 세사람이 고담준론을 나누다가 헤어질 때 이 두 사람을 전송하던 혜원이 자기도 모르게 호계를 넘어가고 말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세 사람이 호계가에서 파안대소하였다.’ (송문일 기록) 여기서는 원상인(遠上人)이 살고 있는 절을 가리킨다.

❖燃桂(연계): 계수나무로 불을 때다. 생활비가 높이 올라감을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초나라의 음식은 옥보다 귀하고 땔나무는 계수나무보다 귀하여서, 지금 저는 옥(玉)을 먹고 계수나무를 땝니다(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今臣食玉炊桂).”

❖黃金燃桂盡(황금연계진): 여기서는 진중(秦中)에 머무를 때에 작자의 처지가 빈곤하여 의식(衣食)도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다.

❖逐年(축년): 해가 갈수록



작가.

맹호연(孟浩然): 689-740 

양주 양양(襄州襄陽: 지금의 호북성 襄樊)사람이다. 젊어서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였으며, 개원(開元) 연간에 장안(長安)으로 들어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맹호연은 비록 종신(終身)토록 포의(布衣)였지만, 당시의 시명(詩名)은 아주 컸다. 맹호연은 오언시에 가장 뛰어나, “천하에서 그 지극히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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