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당시삼백수 정선 51. 留別王維 왕유(王維)에게 이별을 고하다
孟浩然 맹호연
쓸쓸하게 끝내 무엇을 기다렸던가
아침마다 부질없이 혼자서 돌아올 뿐이었지.
향기로운 풀을 찾아 떠나고자 하니
벗과 헤어짐이 아쉬워라.
권세 있는 사람들이야 누가 나를 도와주려나
날 알아주는 진정한 벗이란 세상에서 드문 것을.
다만 마땅히 적막함을 지켜야 할 터이니
돌아가 옛 집의 사립문을 닫으리.
寂寂竟何待, 朝朝空自歸.
欲尋芳草去, 惜與故人違.
當路誰相假, 知音世所稀.
祇應守寂寞, 還掩故園扉.
주석
이 시는 개원(開元) 17년(729), 맹호연(孟浩然)이 장안을 떠날 때 은거하고자 하여, 좋은 벗인 왕유(王維)에게 고별(告別)하며 남겨준 것이다.
❖詩題(시제): 어떤 판본에는 “留別王侍御維”라 했다.
❖留別(유별):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전송하는 사람에게 남겨주는 시를 유별시라고 한다.
❖尋芳草(심방초): 향내나는 풀을 찾다. 산림에 은거하려는 뜻을 가리킨다.
❖惜與故人違(석여고인위): 벗과 헤어짐이 아쉽다. 고인(故人)은 왕유(王維)를 가리킨다. 위(違): 이별하다.
❖當路(당로): 집권하다. 정권을 장악하다. 실권을 장악한 인물.
❖假(가): 돕는다. 관대하게 대우하다. “相假”는 나에게 힘을 빌려준다는 뜻이다. 의지하다.
❖知音(지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좋은 친구.
❖祇(지): 다만.
❖寂(적): 어떤 판본에는 “삭(索)”이라 했다.
❖還掩故園扉(환엄고원비): 이 구는 문을 닫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扉(비): 삽짝. 문짝. 문.
작가.
맹호연(孟浩然): 689-740
양주 양양(襄州襄陽: 지금의 호북성 襄樊)사람이다. 젊어서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였으며, 개원(開元) 연간에 장안(長安)으로 들어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맹호연은 비록 종신(終身)토록 포의(布衣)였지만, 당시의 시명(詩名)은 아주 컸다. 맹호연은 오언시에 가장 뛰어나, “천하에서 그 지극히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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