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당시삼백수 정선 43. 酬張少府 장소부에게 답하여
王維 왕유.
늘그막에 오직 고요함만을 좋아해
세속의 만사에는 관심 두지 않았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훌륭한 계책 없어서
그저 옛 숲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을 알았다.
솔바람 부니 옷의 띠 풀어놓고
산에 뜬 달은 거문고 타는 내 모습을 비춘다.
그대 곤궁과 영달[窮達]의 이치를 묻는데
어부의 노랫소리 깊은 포구에 들려온다.
晩年惟好靜, 萬事不關心.
自顧無長策, 空知返舊林.
松風吹解帶, 山月照彈琴.
君問窮通理, 漁歌入浦深.
주석
이 시는 왕유가 만년에 망천(輞川)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었다. 궁핍과 영달에 관한 벗의 물음에 어부의 노랫소리로 넌지시 대답하고 있다.
❖酬(수): 시를 지어 답하다. 타인의 시를 받고 시로써 응수함.
❖少府(소부): 관직명. 여기서는 현위(縣尉)를 가리키며, 주로 도적을 잡는 등 치안을 담당하였다.
❖自顧(자고): 스스로 돌이켜보다.
❖長策(장책): 좋은 계책.
❖空(공): 공연히. 다만.
❖舊林(구림): 옛 숲. 여기서는 망천의 별장을 가리킨다.
❖解帶(해대): 옛 사람은 조정에 조회하거나 손님을 접견할 때 띠를 차야[束帶]했다. 집에서 한가로이 거할 때는 옷의 띠를 풀었는데, 이를 ‘해대(解帶)’라 한다.
❖窮通(궁통): 곤궁함과 영달. 궁달(窮達). 빈곤(貧困)과 현달(顯達). 곧 인생 실의와 득의의 이치.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 어부가가 깊은 포구에 들어온다. 앞 구의 궁달(窮達: 곤궁과 영달)의 이치를 묻는 물음에 작자는 집접 대답하지는 않는다. 대신 어부가가 포구에 들려오는데서, 여운이 넘쳐나고 있다.
저자.
왕유(王維): 701-761
자는 마힐(摩詰), 조적(祖籍)은 태원 기현(太原祁縣: 지금의 산서성 祁縣)이다. 상원(上元) 원년(760)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어, 세상에서는 “왕우승(王右丞)”이라고 불렀다. 성당(盛唐) 산수전원시파의 대표로 인정되고 있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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