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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당시삼백수 정선 35. 月夜 달밤. 두보 杜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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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당시 삼백수 정선 35. 月夜  달밤. 

두보 杜甫

 

오늘 밤 부주(鄜州)에서 저 달을 

아내는 홀로 바라보겠지.

멀리서 철부지 아들딸 가여워하나니

장안(長安)의 이 아버지를 그리는 엄마의 마음 모르리라.

 

향기로운 안개에 구름 같은 머리가 젖고

맑은 달빛에 옥 같은 두 팔이 차갑겠소.

어느 때나 투명한 창문 커튼 가에 기대어

함께 달빛 아래 마주보며 눈물 흔적 말 리울까.

 

今夜鄜州月,  閨中只獨看.

遙憐小兒女,  未解憶長安.

香霧雲鬟濕,  淸輝玉臂寒.

何時倚虛幌,  雙照淚痕乾.

 

천보(天寶) 15년(756) 5월, 두보(杜甫)는 가족을 이끌고 부주(鄜州)에 피난하였다. 8월, 단신으로 숙종(肅宗)에게 달려가다가 도중에 반군(叛軍)의 포로가 되어 장안(長安)에 갇히었다. 이 시는 두보가 장안에서 부주에 살고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여 지은 시이다.

❖鄜州(부주): 지금의 섬서성 부현(富縣).

❖閨中(규중): 규방에 있는 사람. 여기서는 두보의 아내를 가리킨다.

❖憶長安(억장안): 장안에 있는 이 아버지[두보 자신]를 그리다.

❖淸輝(청휘): 여기에서는 ‘맑은 달빛’을 가리킨다.

❖虛幌(허황): 투명한 창문 커튼.

❖5-6구: 두보 자신이 달을 보며 집안을 생각함으로써 아내가 자신을 그리는 정경이 연상된다.

❖玉臂寒(옥 비한): 달빛 아래에서 남편을 생각하느라 오래 서 있어 두 팔이 차갑다.

❖雙照(쌍조): 두 사람 모두에게 달빛이 비치다.

 

작가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이고, 원적(原籍)은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성 襄樊)이다. 그의 13 세조(世祖)는 두예(杜預)로서, 경조 두릉(京兆杜陵: 지금의 섬서성 長安縣 동북) 사람이다. 그러므로 두보는 자칭 “두릉포의(杜陵布衣)”라고 했다. 증조부는 공현(鞏縣: 지금의 하남성 鞏義)로 이사를 갔다. 두보는 일찍이 장안성 남쪽 소릉(少陵) 부근에 거주한 적이 있다. 그래서 또 자칭 “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하여, “두 소릉(杜少陵)”이라고 불렸다. 후에 검교공 부원 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맡은 적이 있어, 후세에 “두 공부(杜工部)”라고 칭해졌다. 두보는 중국 고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정치․군사․사회의 상황을 전면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사(詩史)”라고 했다. 후인들은 그와 이백(李白)을 병칭 하여 “이두(李杜)”라고 했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 후 연구원(한국 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 추진회(현 한국 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 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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