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당시 삼백수 정선 34. 春望 봄날에 바라보다.
두보(杜甫)
나라[도성]는 깨졌어도 산과 강은 예전 그대로고
성(城)에 봄이 오니 초목만 우거졌다.
시국을 슬퍼하니 꽃을 보고도 눈물 뿌리고
이별이 한스러우니 새소리에도 마음 놀래네.
전쟁을 알리는 봉화가 석 달이나 계속되니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의 값어치 나간다.
흰머리 긁을수록 더욱 적어져
아예 비녀도 못 꼽을 정도라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이 시는 지덕(至德) 2년(757) 3월, 두보가 46세로 장안성에 있을 때 지었다. 당시 안녹산의 반란군이 장안(長安)을 점령하고 있었다. 두보는 적중(敵中)에 있었는데 나라는 깨어지고 집안은 흩어져 내심 극히 고통스러웠다.
❖國破(국파): 國: 도성. 수도. 수도 장안(長安)이 반군에게 함락되었음을 가리킨다.
❖山河在(산하재): 산과 강물은 예전 그대로다.
❖城(성): 수도 장안성(長安城).
❖花濺淚(화천루): 일설에는, ‘꽃이 눈물을 뿌리고’.
❖鳥警心(조경심): 일설에는, ‘새도 마음을 놀래네.’
❖烽火(봉화): 당시 안 사(安史)의 반군은 당군(唐軍)과 각지에서 격전하고 있어서 봉화가 쉬지 않았다. 인신(引伸)되어 전란의 의미가 있다.
❖抵(저): 가치가 있다.
❖渾(혼): 온통. 아예.
❖不勝簪(불승잠): 비녀를 이겨내지 못한다. 머리털이 듬성듬성 줄어들어 온통 비녀도 꼽을 수 없을 지경이다. 옛날 남자는 성년이 되면 머리를 묶는다. 그러므로 비녀를 사용한다. 簪(잠): 비녀. 머리털을 끌어올리거나, 관이 벗어지지 아니하게 머리에 꽂는 물건.
작가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이고, 원적(原籍)은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성 襄樊)이다. 그의 13세조(世祖)는 두예(杜預)로서, 경조 두릉(京兆杜陵: 지금의 섬서성 長安縣 동북) 사람이다. 그러므로 두보는 자칭 “두릉포의(杜陵布衣)”라고 했다. 증조부는 공현(鞏縣: 지금의 하남성 鞏義)로 이사를 갔다. 두보는 일찍이 장안성 남쪽 소릉(少陵) 부근에 거주한 적이 있다. 그래서 또 자칭 “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하여, “두소릉(杜少陵)”이라고 불렸다. 후에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맡은 적이 있어, 후세에 “두공부(杜工部)”라고 칭해졌다. 두보는 중국 고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정치․군사․사회의 상황을 전면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사(詩史)”라고 했다. 후인들은 그와 이백(李白)을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했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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