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정월 20일, 기정으로 가는데, 마을 사람 반, 고, 곽씨 3인이 나를 여왕성 동쪽의 선장원까지 배웅하다
正月二十日, 往岐亭, 郡人潘古郭三人送余於女王城東禪莊院
꽃샘추위가 열흘이나 지속되어 문밖을 나서지 않았더니
강가의 버들이 이미 온 마을에서 살랑거림을 몰랐었네.
골짜기 얼음장 밑으로 콸콸 흐르는 냇물소리 조금 들리고
봄 쥐불 태운 흔적위에 파릇파릇 새싹 돋아났다.
몇 이랑 거친 동산에 내가 머물러 살고
반 병 막걸리로 그대들의 훈훈한 얼굴 대했지.
작년 이날 관산 넘던 길에는
이슬비 속에 젖는 매화꽃에 넋이 나갔지.
十日春寒不出門, 不知江柳已搖村.
稍聞決決流冰谷, 盡放靑靑沒燒痕.
數畝荒園留我住, 半甁濁酒待君溫.
去年今日關山路, 細雨梅花正斷魂.
(권21)
[주석]
. 決決(결결): 콸콸. 물이 흐르는 모양. 의성어.
. 盡放靑靑沒燒痕(진방청청몰소흔): 봄 쥐불 태운 흔적위에 파릇파릇 새싹 돋아났다. 푸른 풀은 모두 싹이 터서 검게 쥐불 태운 맨땅을 덮었다.
. 斷魂(단혼): 혼이 끊어지다. 넋이 빠졌다. 넋이 나가다.
. 去年今日關山路, 細雨梅花正斷魂(거년금일관산로, 세우매화정단혼): 작년 이날 관산 넘던 길에는, 이슬비 속에 젖는 매화꽃에 넋이 나갔지.「매화이수(梅花二首)」에서 묘사한 바, 작년 황주로 오던 도중의 정경으로써, 오늘 여행길에서 느낀 바를 묘사하고 있다.
[해제]
46세(원풍4년, 1081년) 봄, 동파가 진조(陳慥)를 방문하러 기정(岐亭)에 가는데, 황주에서 새로 사귄 친구 반, 고, 곽씨 세 사람이 배웅하여 성을 나와 여왕성 동쪽의 선장원까지 왔다. 그때 쓴 시이다. 이날은 마침 황주로 유배오던 길에 춘풍령을 지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봄기운이 어느덧 퍼져 꽃샘추위도 지나 강가의 버들이 살랑거리고 봄 시냇물이 얼음을 녹이고, 파릇파릇 봄 싹이 돋아나 완연한 봄이 되었다.
역자 서문
소동파(본명 蘇軾, 1036-1101)는 중국 북송조 최고수준의 문인으로 정치가 ․ 예술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자연을 애호하여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했으며, 경학(經學), 요리 만들기, 술의 제조, 차의 품평, 서예, 그림, 그리고 예술감식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최고의 지성인이다. 그는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를 실천하였다. 그는 일기를 쓰듯 편지를 쓰듯 시를 지었다. 그만큼 기록을 중시한 문인이다. -중략-
소동파는 고려 ․ 조선시대의 한문학(漢文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중국문인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동인시화(東人詩話)≫ 권상(卷上)에서, 서거정(徐居正)은 “고려 문인은 오로지 동파를 숭상하여, 과거 급제자의 방이 나붙을 때마다, 사람들이 말하길, ‘33인의 동파가 나왔구나’라고 하였다(高麗文士專尙東坡, 每及第榜出, 則人曰: ‘三十三東坡出矣!)’” 이를 통해 고려시대 문인이 소동파를 학문과 문장의 최고 모범으로 삼았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는 “고려시대 문인들이 과거 급제 전에는 과거시험 준비 때문에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 합격 후에야 부담 없이 시 짓기를 배우는데 그 가운데 소동파의 시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李奎報, 「答全履之論文書」)라는 말과 관련되어, 당시 소동파 문학의 유행도를 상징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고려 고종(高宗) 23년 몽고 침입의 와중에서 전주(全州)에서 소동파문집을 중각(重刻)했던 사실에서도 당시의 소동파 열기를 짐작하게 해 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문인이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를 애호하여 각지에서 “적벽선유(赤壁船遊)”의 기풍을 재현한 점이나, 조선 후기 일단의 시인들이 “배파회(拜坡會: 소동파를 숭배하는 모임)”를 성립시켜 소동파의 생일을 기념하는 시회(詩會)를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 문인의 소동파 애호 풍조를 실증하고 있다.
-중략-
방배(方背) 상우재(尙友齋)에서
조규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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