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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당시삼백수 정선 62. 客至 손님이 이르러 杜甫 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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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당시삼백수 정선 62. 客至  손님이 이르러 

杜甫 두보


봄날 집 앞뒤로 온통 물인데

날마다 떼 지어 날아오는 갈매기만 보일 뿐.

꽃 길 손님 오신다하여 쓸어본 적도 없는데

쑥대 사립문 오늘 처음 그대 위해 연다.


시장이 멀어 차린 반찬도 변변찮고

집이 가난하여 술도 다만 묵은 막걸리뿐.

이웃 늙은이와 함께 한 잔 마시고 싶으면 

울타리 너머로 불러 남은 잔 다 비우세.


舍南舍北皆春水,  但見群鷗日日來.

花徑不曾緣客掃,  蓬門今始爲君開.

盤飧市遠無兼味,  樽酒家貧只舊醅.

肯與鄰翁相對飮,  隔籬呼取盡餘杯.



이 시는 두보(杜甫)가 상원(上元) 2년(761) 50세에 성도(成都)의 초당(草堂)에서 조용히 살 때 지었다. 손님이 초당으로 찾아오는 일상생활의 자잘한 일을 묘사하였는데, 진솔함과 한적한 정회가 드러나고 있다.

❖客(객): 최명부(崔明府)를 가리킨다. 당(唐)나라 사람들은 현령(縣令)을 명부(明府)라고 불렀다. 원시(原詩)의 자주(自注), “최명부가 방문하여 기쁘다(喜崔明府相過).” 過(과): 방문하다.

❖舍(사): 초당(草堂)을 가리킨다.

❖緣客掃(연객소): 손님이 오신다하여 청소하다. 손님 때문에 청소하다.

❖蓬門今始爲君開(봉문금시위군개): 이 구와 앞 구는 손님이 적음을 이야기하고, 또 손님이 와서 기쁜 정감을 표현하고 있다.

❖盤飧(반손): 널리 안주를 가리킨다.

❖兼味(겸미): 여러 가지 요리.

❖舊醅(구배): 오래 전에 담가놓은 술. 진주(陳酒). 醅(배): 거르지 않은 술. 탁주. 좋은 술일 경우 미리 걸러두어야 했으나, (집이 가난하여) 격식을 거치지 않고 술동이에서 그대로 퍼왔음을 말함. 당나라 때는 새 술을 귀하게 여겼다.

❖呼取(호취): 불러 오다.



작가.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이고, 원적(原籍)은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성 襄樊)이다. 그의 13세조(世祖)는 두예(杜預)로서, 경조 두릉(京兆杜陵: 지금의 섬서성 長安縣 동북) 사람이다. 그러므로 두보는 자칭 “두릉포의(杜陵布衣)”라고 했다. 증조부는 공현(鞏縣: 지금의 하남성 鞏義)로 이사를 갔다. 두보는 일찍이 장안성 남쪽 소릉(少陵) 부근에 거주한 적이 있다. 그래서 또 자칭 “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하여, “두소릉(杜少陵)”이라고 불렸다. 후에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맡은 적이 있어, 후세에 “두공부(杜工部)”라고 칭해졌다. 두보는 중국 고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정치․군사․사회의 상황을 전면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사(詩史)”라고 했다. 후인들은 그와 이백(李白)을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했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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