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당시삼백수 정선 64. 寄李儋元錫 이담․원석에게 부치다
韋應物 위응물
지난 해 꽃 시절에 그대 만나 헤어졌는데
오늘 꽃이 피니 또 한 해가 지났구나.
세상일 아득하여 스스로 헤아리기 어렵고
봄 시름에 울적한 채 홀로 잠을 이루네.
몸에는 병이 많아 전원이 그리웁고
고을에 유랑민이 있어 봉급받기 부끄러워라.
그대들이 날 보러 오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서루(西樓)에서 바라보는 저 달이 몇 번이나 둥글어야 하나.
去年花裡逢君別, 今日花開又一年.
世事茫茫難自料, 春愁黯黯獨成眠.
身多疾病思田里, 邑有流亡愧俸錢.
聞道欲來相問訊, 西樓望月幾回圓.
주석
이 시는 위응물이 저주자사(滁州刺史)로 있을 때에 지었다. 봄날 수심이 일어나 벗을 그리워하며 보내는 시이다.
❖李儋元錫(이담원석): 李儋(이담): 무위(武威:지금의 감숙성 武威)사람으로, 일찍이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역임했다. 원석(元錫): 자(字)는 군황(君貺)으로, 일찍이 치왕부(淄王傅)를 역임했다. 두 사람은 위응물(韋應物)의 벗이다. 일설에는, 이원석(李元錫)의 이름이 담(儋)이라고 한다.
❖黯黯(암암): 어두울 암. 심정이 울적함을 형용한다.
❖邑(읍): 고을. 여기서는 저주(滁州)의 관할지.
❖邑有流亡愧俸錢(읍유류망괴봉전): 고을에 유랑민이 있어 봉급받기가 부끄럽다. 관리로서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流亡(류망): 집을 떠나 외지로 가서 유랑하는 사람. 유랑민. 이재민.
❖俸錢(봉전): 봉급.
❖問訊(문신): 소식을 묻다. 여기서는 ‘문안하다, 방문하다’의 뜻이다.
❖西樓(서루): 저주(滁州)의 서루(西樓)를 가리킨다.
저자.
위응물(韋應物): 대략 737-대략 792
경조 만년(京兆萬年: 지금의 섬서성 西安) 사람이다. 정원(貞元) 원년(785)에 강주자사(江州刺史)가 되었고, 4년(788)에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임명되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위강주(韋江州)” 혹은 “위소주(韋蘇州)”라고 불리운다.
역주.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당시삼백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시삼백수 정선 73. 登鸛雀樓 관작루에 올라 王之渙 왕지환 빛나던 태양은 산 너머 지고 (0) | 2019.11.27 |
---|---|
당시삼백수 정선 72, 靜夜思 고요한 밤 생각 李白 이백,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 (0) | 2019.11.27 |
당시삼백수 정선 70~71. 宿建德江 건덕강에서 자며 孟浩然(맹호연) (0) | 2019.11.24 |
당시삼백수 정선 66~69 왕유, 석양빛이 깊은 숲에 들어오고 또 푸른 이끼 위를 비춘다. (0) | 2019.11.20 |
당시삼백수 정선 65. 無題 (무제) 밤에 시를 읊조리다보니 달빛이 차가움을 느낀다. (0) | 2019.11.20 |
당시삼백수 정선 (0) | 2019.11.16 |
당시삼백수 정선 (0) | 2019.11.16 |
당시삼백수 정선 (0) | 2019.11.16 |
당시삼백수 63. 登高 높은 곳에 올라 ͊杜甫 두보. (0) | 2019.11.15 |
당시삼백수 정선 62. 客至 손님이 이르러 杜甫 두보 (0) | 2019.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