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66. 鹿柴
사슴 농장
王維
빈 산엔 사람 모습 보이지 않고
다만 사람 말소리만 두런두런 들린다.
석양빛이 깊은 숲에 들어오고
또 푸른 이끼 위를 비춘다.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影入深林, 復照靑苔上.
「주석」
* 적막한 산 속에 들어가 저녁놀빛에 물드는 푸른 이끼를 묘사한 시이다.
. 鹿柴(녹채): 망천(輞川)별장 주위에 있는 20군데 경승지 가운데 하나. ‘녹채(鹿柴)’의 ‘柴’는 ‘시’로 읽을 때는 ‘장작, 땔감, 땔나무’의 의미이다. 그러나 ‘채’로 읽을 때는 ‘울짱, 목책(木柵)’의 의미로 되며, ‘울타리, 성채 채(砦)’와 통한다. 여기서는 ‘사슴농장’의 의미이므로 ‘녹채’라고 읽는다. “녹채(鹿柴)”는 사슴을 기르는 농장이 있는 곳이다. 망천별장은 원래 초당(初唐)의 궁정시인 송지문(宋之問)의 별장이었는데 왕유가 구입한 것이다. 여기서 왕유와 그의 벗 배적(裴廸)은 그 주변의 경승지 20군데를 “망천이십경(輞川二十景)”으로 정하여 그 경치를 모두 읊어 제각기 같은 제목으로 오언절구를 지어 창화(唱和)하였다. 여기서 두 시인이 각기 20수씩 40수의 작품을 모은 시집이 망천집(輞川集)이다.
. 返影(반영): 어떤 판본에는 “景(경, 영)”이라 했다. 해질 무렵의 되비쳐 오는 빛. 석양빛. 저녁놀빛. 석양회조(夕陽回照: 석양빛을 받아 빛나다). 낙일반조(落日返照). “영(影)”은, ‘일영(日影: 해의 그림자)’을 가리킨다. 『초학기(初學記) ․ 일부(日部)』: “태양이 서쪽으로 떨어지면, 빛은 동쪽에 반조(返照)한다. 그것을 일러 ‘일경, 일영(日景)’이라 한다.”
여기서 반조(返照)는 ‘빛이 되비치다. 반사하다. 석양. 낙조. 저녁놀’의 의미이다.
「평설」
愚案: 텅 빈 산이란 깊고 그윽한 산이다. 여기서는 정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말소리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들리는, 그래서 더욱 정적을 느끼게 되는 그러한 산으로 보여진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새소리가 들리며, 때로는 매미울음소리가 들려야 그 정적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이 시는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빈 산 - 사람의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림 - 깊은 숲 속 - 푸른 이끼에 스며들어 비추는 석양’으로, 작자를 기준으로 먼 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으로 시점이 이동하고 있다.
이는 왕유가 관직을 겸하면서 틈나는 대로 자연을 가까이하는 생활과도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깊은 산에 은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세속에 사는 것도 아니다. 절대고독을 좋아했다면 아주 산중에서 도인이 되었을 법하지만 그는 얼마동안 홀로 있는 시간을 좋아했지 인간세상과 절연한 고독을 원하지는 않았다. 상당히 인간적이면서 자연에 동화하는 왕유 나름의 멋을 추구하고 있다. 세속의 가까이 있으면서도 은거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그의 망천별장이다.
67. 竹里館
대숲 속의 집
王維
홀로 그윽한 대숲 속에 앉아
거문고를 퉁기다가 다시 길게 휘파람도 부니
깊은 숲이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데
밝은 달은 찾아 와서 비추어 준다.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주석」
* 그윽한 대숲 속에 홀로 앉아 거문고를 타고 휘파람을 부는데, 밝은 달이 찾아와 비추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은자의 한적한 선취(禪趣)를 그리고 있다.
. 竹里館(죽리관): 대숲 속의 별채. 망천(輞川) 20경(景)의 하나. 대나무 숲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幽篁(유황): 그윽한 대나무 숲. 篁(황): 대나무 숲.
. 長嘯(장소): 길게 휘파람 불다. 嘯(소): 휘파람을 불다.
. 相照(상조): “상조(相照)”라 하여도 특별히 서로 비추어준다는 뜻은 아니다. 상관의 관계에 있다면 “상(相)”이란 글자를 쓸 수 있으니, 달이 이쪽을 비춰준다는 정도의 의미에 해당한다.(吉川幸次郞 저, 심경호 역, 『당시 읽기』, 132쪽)
「평설」
愚案: 별장의 아주 깊숙한 곳 대숲 속에 있는 작은 별채의 풍경을 읊고 있다. 여기서 왕유는 고독자의 풍모를 보여준다. 그윽한 대나무 숲에 홀로 앉아 거문고를 퉁기다가 다시 길게 휘파람도 분다. 깊은 숲이라 아무도 모르는데, 휘영청 밝은 달이 슬며시 다가와 비추고 있다. 좋은 벗인 달이 작자와 정을 나눈다. 동적인 가운데 정적인 것[動中靜]이 부각되고 있다. 그는 이처럼 때로 고독을 사랑하는 탈속적인 멋을 좋아했다.
68. 送別
송별
王維
산중에서 그대를 보내고
날이 저물어 사립문을 닫는다.
봄풀은 해마다 푸른데
그대여 오려나 못 오려나?
山中相送罷, 日暮掩柴扉.
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
「주석」
* 벗과 이별 후 쓸쓸하여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 시이다.
. 王孫(왕손): 왕손. 귀족의 자손. 여기서는 이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 年年(년년): 해마다. 어떤 판본에는 “明年”이라 했다.
69. 雜詩
잡시
王維
그대는 고향에서 왔으니
응당 고향의 일을 알리라.
오던 날 비단 창문 앞에
매화꽃이 피었던가, 안 피었던가?
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綺窗前, 寒梅著花未.
「주석」
* 담박한 어조로 절실한 사향심을 묘사하였는데, 완연히 그림과 같다. 가족, 가축, 농사 등등 궁금한 고향의 소식이 많았을 터인데, 오직 매화가 피었는가만 묻고 있다. 감춤과 절제력이 뛰어나다.
. 自(자): ..... 로부터.
. 來日(내일): 오던 날.
. 着花: 꽃이 피다.
저자.
왕유(王維): 701-761
자는 마힐(摩詰), 조적(祖籍)은 태원 기현(太原祁縣: 지금의 산서성 祁縣)이다. 상원(上元) 원년(760)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어, 세상에서는 “왕우승(王右丞)”이라고 불렀다. 성당(盛唐) 산수전원시파의 대표로 인정되고 있다.
* 역자 소개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당시삼백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시 삼백수 75. 秋夜寄邱員外 가을밤에 구원외에게 부치다 韋應物 위응물. (0) | 2019.11.29 |
---|---|
당시삼백수 정선 74. 送靈澈 영철스님을 보내며 劉長卿 유장경 (0) | 2019.11.27 |
당시삼백수 정선 73. 登鸛雀樓 관작루에 올라 王之渙 왕지환 빛나던 태양은 산 너머 지고 (0) | 2019.11.27 |
당시삼백수 정선 72, 靜夜思 고요한 밤 생각 李白 이백,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 (0) | 2019.11.27 |
당시삼백수 정선 70~71. 宿建德江 건덕강에서 자며 孟浩然(맹호연) (0) | 2019.11.24 |
당시삼백수 정선 65. 無題 (무제) 밤에 시를 읊조리다보니 달빛이 차가움을 느낀다. (0) | 2019.11.20 |
당시삼백수 정선 64. 寄李儋元錫 이담․원석에게 부치다 韋應物 위응물 (0) | 2019.11.16 |
당시삼백수 정선 (0) | 2019.11.16 |
당시삼백수 정선 (0) | 2019.11.16 |
당시삼백수 정선 (0) | 2019.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