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18. 溪居
시냇가에 살며
柳宗元(유종원)
오랫동안 벼슬살이에 매여 있다가
다행히도 이제 남쪽 오랑캐 땅으로 귀양왔구나
한가로이 농가와 이웃하여 의지하니
우연히도 산림 속 은자와 같구나.
새벽이면 이슬 맺힌 풀 뒤집어 밭을 갈고
밤이면 노를 저으니 시냇물 돌 부딪혀 소리나네.
오나가나 만나는 사람 하나 없고
길게 노래 부르니 초(楚)땅 하늘만 푸르구나.
당시삼백수 정선 유종원 동영상
久爲簪組束, 幸此南夷謫.
閑依農圃鄰, 偶似山林客.
曉耕翻露草, 夜榜響溪石.
來往不逢人, 長歌楚天碧.
주석
원화(元和) 5년(810)에 유종원이 호남성 영주(永州)에 유배되어 있을 때, 우계(愚溪)에서 지은 시이다. 한가로이 사는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타향에서의 외로움 가운데 자연과 융합되고 있는 작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관직에 얽매어 있다가 유배되어 한가한 자연을 벗할 수 있으니 관점에 따라선 다행이기도 하겠다. 불행을 다행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溪(계): 冉溪(염계). 유종원이 영주(永州) 영릉(零陵)의 염계(冉溪) 가에다 집을 지었는데, 그 냇물을 “우계(愚溪)”라고 명명하였다. 「우계시서(愚溪詩序)」 참조.
❖簪組(잠조): 관(冠)의 비녀와 인끈. 벼슬아치에게 사용된다. 여기서는 벼슬아치가 됨을 뜻한다. 簪(잠): 비녀. 관이 벗겨지지 않도록 관의 끈을 꿰어 머리에 꽂는 비녀. 동곳. 組(조): 인끈. 수(綏).
❖束(속): 속박되다. 어떤 판본에서는 ‘累’.
❖幸此南夷謫(행차남이적): 남쪽 변방으로 유배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다. 南夷謫(남이적): 유종원(柳宗元)이 영주(永州)로 좌천됨을 말한다. 南夷(남이): 옛날에 남방 소수민족을 폄하하는 말로, 여기서는 영주(永州)를 가리킨다.
❖農圃(농포): 농부의 채마밭.
❖榜(방): 노. 배를 젖다.
❖響溪石(향계석): 상앗대가 시냇물의 돌에 닿았을 때 내는 소리.
❖楚天(초천): 그가 좌천된 곳 영주(永州)는 남방 초(楚)땅이었기 때문에 초(楚)땅 하늘이라고 했다.
작가
유종원(柳宗元): 773-819
자는 자후(子厚)이고, 조적(祖籍)은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성 永濟)이다. 그러므로 세칭 “유하동(柳河東)”이라고 부른다. 유종원은 당대(唐代)의 고문대가(古文大家)로서, 한유(韓愈)와 더불어 고문운동의 대표자가 되어, 세상에서 “한류(韓柳)”라 일컫는다. 그는 또 시를 잘하여,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 4권이 들어갔다.
역자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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