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22. 夜歸鹿門歌
밤에 녹문산(鹿門山)으로 돌아가며
孟浩然 (맹호연)
산사(山寺)의 종이 울어 날이 이미 저무니
어량 나루에는 다투어 먼저 건너려는 떠들썩한 소리. 사람들은 모랫길 따라 강마을로 향하는데 나는 또한 배를 타고 녹문산(鹿門山)으로 돌아간다. 녹문산에 달 비추자 숲을 덮었던 저녁안개 걷히고 어느덧 방덕공이 은거했던 곳에 이르렀네. 바위 문, 소나무 숲길은 오랫동안 고요한데 오직 은자만이 홀로 왔다 갔다 한다. 山寺鐘鳴晝已昏, 漁梁渡頭爭渡喧. 人隨沙路向江村, 余亦乘舟歸鹿門. 鹿門月照開煙樹, 忽到龐公棲隱處. 巖扉松徑長寂寥, 惟有幽人自來去. 이 시는 밤에 녹문산으로 돌아가며 길에서 본 것을 묘사하였는데, 옛 현인 방덕공을 사모하는 정회를 펴고 있다. ❖夜歸鹿門歌: 어떤 판본에는 “夜歸鹿門山歌”라 했다. ❖鹿門(녹문): 산 이름. 녹문산. 호북성 양양(襄陽: 지금의 襄樊市)에 있다. 맹호연은 방덕공의 고아한 흥취를 추모하여, 그 또한 여기서 은거하였다. ❖漁梁(어량): 땅이름. 어량주(漁梁州)를 가리키는데, 지금의 호북성 양번(襄樊)성내에 있다. . 開煙樹(개연수): 달빛이 내려 비추자, 안개로 휘감긴 수목이 점점 드러난다. ❖龐公(방공): 방덕공(龐德公). 후한서(後漢書), 「일민전(逸民傳)」에 “방공(龐公)은 양양(襄陽)사람이다. 형주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자주 청하였으나 굽히지 않았다. 뒤에 처자식을 데리고 녹문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면서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巖扉(암비): 산 바위가 서로 마주하여 마치 문과 같아, 암비(巖扉)라고 하였다. ❖幽人(유인): 숨어사는 사람. 은자. 여기서는 맹호연 자신을 가리킨다.
작가소개
맹호연(孟浩然): 689-740 양주 양양(襄州襄陽: 지금의 호북성 襄樊)사람이다. 젊어서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였으며, 개원(開元) 연간에 장안(長安)으로 들어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맹호연은 비록 종신(終身)토록 포의(布衣)였지만, 당시의 시명(詩名)은 아주 컸다. 맹호연은 오언시에 가장 뛰어나, “천하에서 그 지극히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號,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께 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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