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卜算子
황주 정혜원 우거(寓居)에서
성긴 오동나무엔 조각달 걸려 있고
물시계 소리 끊어져 인적도 잠잠하여라.
누가 보리오, 왔다 갔다 홀로 거니는 은자의 모습
아득히 먼 곳 외기러기 그림자여.
깜짝 놀라 일어나 고개를 돌려보아도
내 마음의 설움 알아주는 이 없어라.
차가운 가지 다 골라 보고는 깃들이려 않고
적막하게 썰렁한 모래 섬에 내려앉네.
黃州定慧院寓居作
缺月掛疏桐, 漏斷人初靜.
雖見幽人獨往來, 縹緲孤鴻影.
驚起却回頭, 有恨無人省.
揀盡寒枝不肯棲, 寂寞沙洲冷.
[주석]
. 黃州: 지금의 호북성 黃州市.
. 定慧院: 一作, ‘定惠院’. 황주 동남쪽에 있다. 동파는 처음 황주로 온 3개월 동안 이곳에 거주하였다.
. 漏斷: 밤이 깊음을 가리킨다. 漏는 옛날의 물시계이다.
. 雖見: 㰡軾詞編年校註㰡↓ 作, “時見”
. 幽人: 원래 ‘감금되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사람’이나 ‘은둔한 사람’으로 引伸되었다. 유배인을 가리키는 적절한 용어이다.
. 縹緲(표묘): 아득하다.
. 省: 살피다. 이해하다. 깨닫다.
. 揀盡寒枝不肯棲, 寂寞沙洲冷: 기러기가 썰렁한 가지를 다 골랐으나 깃들으려 하지 않고, 적막하게 썰렁한 모래톱에 내려앉는다. 기러기는 본래 나뭇가지에 서식하지 않는다. 작자는 깃들어 살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여 기러기의 고결함을 표현하고 있다.
[창작 시기] 45세(元豐3년, 庚申, 1080) 2월-5월, 황주(黃州)에서 지었다.
[해제]
상편(上片)은 은자가 홀로 있어 보는 사람이 없음을 묘사하고 있고, 하편(下片)은 외로운 기러기가 살펴주는 사람 없이 적막하게 지냄을 묘사하고 있다. 은자와 외기러기가 상응하는데, 사람은 외로운 기러기요, 기러기는 은자이다. 의경(意境)이 맑고 빼어나 유배 시기의 수심, 고독, 그리고 맑고 고상하여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심경과 일치되어, 정묘(精妙)한 예술 경계에 도달하고 있다.(王王)
이 외로운 기러기는 바로 소식의 화신이다. 그는 비탄과 한스러움이 있어도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고, 고상한 품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세상을 따라 부침(浮沈)하지도 않는다.(王)
(宋) 黃庭堅, 㰡ﱫ章先生文集㰡↓ 卷26, <跋東坡樂府>: “東坡道人이 황주에서 지은 것으로, 사어(詞語)의 의미가 고묘(高妙)하여, 마치 연기를 마시고 화식(火食)하는 사람의 말이 아닌 것 같다. 가슴속에 수만 권의 책이 있지 않고, 붓 아래 한 점 티끌 세속의 기(氣)가 없지 않다면, 누가 이에 이를 수 있겠는가?(東坡道人在黃州時作, 語意高妙, 似非吃煙火食人語. 非胸中有萬卷書, 筆下無一點塵俗氣, 孰能至此).”
[평설]
愚案: 오동나무 사이로 조각달이 걸려있는 깊은 밤 아무 인적도 없는데 어슬렁거리는 은자의 모습은 곧 작자 자신이다. 그는 자신을 하늘 멀리 날아가는 외기러기의 고독한 형상으로 투영하고 있다. 놀라 일어나 고개 들어 보아도 마음의 상처, 설움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지금껏 살아왔는데도 이곳 황주(黃州)에 유배된 처지라니. 차가운 가지 다 골라 보고는 깃들여 살려고 하지 않고 적막하게 썰렁한 모래섬에 내려앉는 기러기를 통해, 여러 지위와 많은 사람들을 다 겪어보았으나 끝내 선택을 유보하는 고결한 자신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거린다(撫孤松而盤桓)”와 그 정조가 통한다.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할 대상이 없는 외로움이 진하게 배어나고 있다.
* 저자 소개
소동파
소동파(1036-1101, 음력)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북송(北宋)은 중국의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로 자유스런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였으며, 유불도(儒佛道) 사상이 합류(合流)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의 문학 영역은 물론 서법, 회화, 의학, 경학(經學),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유가(儒家) 임을 자부하면서도 도가와 불가 사상에 대해서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동파는 송시(宋詩)의 전형적인 특성을 확립시킨 시인이며, 산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고, 삶의 지혜를 밝혀 낼 만큼 깊으며, 자유분방하다. 또한 신선함, 통찰력, 그리고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고가 깊고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있으며 기지가 있다. 사대부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유불도 사상이 합류되어 있고, 인생철리가 함유되어 있다. 거시적 미시적 안목을 두루 갖춘 그의 문학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 역자 소개
조 규 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 후 연구원(한국 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 추진회(현 한국 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 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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