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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소동파 시선-붉은 입술 술 마신듯 발그레 양 볼 상기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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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나그네살이 하는 정혜원의 동쪽에 여러 꽃들이 산에 가득한 가운데 해당화가 한 그루 있는데, 이 지방 사람들은 이 꽃의 귀함을 모른다
寓居定惠院之東, 雜花滿山, 有海棠一株, 土人不知貴也

강을 낀 황주성은 습기가 많고 초목 무성한데
오직 이름 높은 해당화 한 그루 있어 아주 쓸쓸해 보인다.
빙긋 한 번 대울타리 사이에서 웃으니
온 산 가득한 복숭아꽃 오얏꽃은 모두 거칠고 촌스럽게 보인다.

응당 알겠다, 조물주가 깊은 뜻 있어
일부러 가인을 이 인적 없는 골짜기로 보낸 것임을.
자연스럽고 부귀한 모습은 하늘이 낸 자태이니
금 쟁반에 담아 화려한 집에 모셔 놓을 것도 없다.

붉은 입술 술 마신듯 발그레 양 볼 상기되고
푸른 소매[잎]가 엷은 비단을 말아 올리니 붉게 살갗에 비친다.
깊은 숲에 안개 자욱하여 새벽빛은 더디지만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살랑대어 봄 잠 무르녹더라.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니 꽃은 또한 더욱 처량하고
달빛 아래 사람 아무도 없으니 꽃은 더욱 청초하다.

선생은 배불리 먹고 할 일 하나도 없어
이리저리 마음대로 거닐며 자기 배를 문지른다.
남의 집이건 절간이건 물어보지도 않고
지팡이 짚고 가서 문을 두드리고 길게 자란 대나무를 구경한다.

갑자기 절색가인 해당화가 늙고 시든 내 몸 비추니
탄식하며 말없이 병든 눈만 씻는다.

누추한 땅에 어디서 이 꽃이 났을까
호사가가 내 고향 서촉 땅에서 옮겨 온 것이 아닐까.
한 치의 뿌리라도 천리 길을 가져오기 쉽지 않으리니
씨를 물고 날아온 건 틀림없이 기러기와 고니일 거라.

하늘 끝에 흘러 왔으니 너나나나 다 외로운 처지라
한 동이 술을 마시며 이 곡을 노래 부른다.
내일 아침 술 깨어 다시 홀로 와 볼 때면
눈 내리듯 후드득 떨어질 꽃잎을 어찌 차마 만지리.

江城地瘴蕃草木, 只有名花苦幽獨.
嫣然一笑竹籬間, 桃李漫山總麤俗.
也知造物有深意, 故遣佳人在空谷.
自然富貴出天姿, 不待金盤薦華屋.
朱脣得酒暈生臉, 翠袖卷紗紅映肉.
林深霧暗曉光遲, 日暖風輕春睡足.
雨中有淚亦悽愴, 月下無人更淸淑.
先生食飽無一事, 散步逍遙自捫腹.
不問人家與僧舍, 拄杖敲門看修竹.
忽逢絶艶照衰朽, 歎息無言揩病目.
陋邦何處得此花, 無乃好事移西蜀.
寸根千里不易致, 銜子飛來定鴻鵠.
天涯流落俱可念, 爲飮一樽歌此曲.
明朝酒醒還獨來, 雪落紛紛那忍觸.
(권20)

[주석]

. 江城(강성): 강가의 성. 여기서는 황주를 가리키는데, 장강(長江)에 임하고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
. 苦幽獨(고유독): 그윽이 혼자 자란다. 매우 쓸쓸해 보인다.
. 嫣然(언연): 빙긋.
. 佳人(가인): 해당화를 가리킨다. 의인법을 사용하고 있다.
. 空谷(공곡): 빈 골짜기. 인적 없는 골짜기.
. 先生(선생): 작자 자신을 말함.
. 好事(호사): 호사가. 일을 벌여서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 西蜀(서촉): 서촉. 서촉은 해당화가 많아 “향기로운 해당화가 나는 고장(香海棠國)”이라는 이름이 있다.

「해제」

45세(원풍 3년, 1080년)에 지었다. 동파는 산을 노닐며 우연히 해당화를 보자, 정이 생겨 자신의 신세를 해당화에 기탁하고 있다. 앞 14구는 주로 의인법을 사용하여, 해당화를 하늘이 낸 자태, 부귀롭고 맑음, 절색가인으로 비유하고 있다. “先生”이하 14구는 회포를 서술하여 꽃으로써 자신을 비유하여, 똑같이 서촉 땅에 뿌리를 두었는데 누추한 땅에 떨어진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결미에서는 해당화가 시들 것을 예견하여 더욱 암담하고 처량하다.(王王)

* 저자 소개

소동파

소동파(1036-1101, 음력)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북송(北宋)은 중국의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로 자유스런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였으며, 유불도(儒佛道)사상이 합류(合流)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의 문학영역은 물론 서법, 회화, 의학, 경학(經學),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유가(儒家)임을 자부하면서도 도가와 불가사상에 대해서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동파는 송시(宋詩)의 전형적인 특성을 확립시킨 시인이며, 산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고, 삶의 지혜를 밝혀 낼 만큼 깊으며, 자유분방하다. 또한 신선함, 통찰력, 그리고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고가 깊고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있으며 기지가 있다. 사대부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유불도 사상이 합류되어 있고, 인생철리가 함유되어 있다. 거시적 미시적 안목을 두루 갖춘 그의 문학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 역자 소개

조 규 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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