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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소동파 사선 29. 水調歌頭 달빛은 붉은 누각을 돌아 비단 창문에 나지막이 드리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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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29. 水調歌頭


병진(丙辰)년 중추절에 기분 좋게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는 크게 취한 채 이 사(詞)를 짓고, 아울러 아우 자유(子由)를 그린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떴느냐고

술잔 들고 푸른 하늘에게 물어본다.

모르겠노라, 천상의 궁궐에서는

오늘밤이 어느 해인지를.

바람을 타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은데

오직 두려운 것은 옥으로 만든 월궁(月宮)에서는

높은 곳이라 추위를 못 견딜까봐.

일어나 춤추며 맑은 달 그림자 희롱하니

어찌 인간 세상에 있는 것 같다고 하리.


달빛은 붉은 누각을 돌아

비단 창문에 나지막이 드리우며

잠 못 이루는 나를 비추어주네.

달에게 그 무슨 이별의 한(恨) 있으랴만

어이하여 늘 이별해 있을 때만 둥근가.

사람에겐 슬픔과 기쁨, 이별과 상봉이 있고

달에겐 흐림과 맑음, 둥그러짐과 이지러짐이 있는 법.

이 일은 예로부터 온전하기 어려웠네.

다만 바라는 것은 사람 오래오래 살아서

천리 먼 곳에서나마 함께 고운 달 감상할 수 있기를.


丙辰中秋, 歡飮達旦, 大醉, 作此篇, 兼懷子由


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  

不知天上宮闕, 今夕是何年? 

我欲乘風歸去, 又恐瓊樓玉宇, 高處不勝寒.  

起舞弄淸影, 何似在人間! 


轉朱閣, 低綺戶, 照無眠.  

不應有恨, 何事長向別時圓? 

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  

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주석]


. 丙辰: 熙寧9년.

. 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 李白, <把酒問月>, “푸른 하늘에 달이 있은지 언제런가/ 나는 지금 술잔을 멈추고 한 번 물어본다(靑天有月來幾時, 我今停杯一問之).”  

. 不知天上宮闕, 今夕是何年: 하늘의 궁전에서는 오늘 저녁이 어느 해에 속하는 거냐. 신화전설에서는 천상과 인간세상의 시간의 속도가 같지 않다고 한다.

. 瓊樓玉宇: 옥으로 지은 누각과 집. 月宮을 가리킨다.

. 起舞弄淸影, 何似在人間: 달 아래서 일어나 춤을 추면 그 그림자는 사람을 따라 움직이니, 어찌 인간세상과 같을까. 언외의 뜻은 인간세상에서도 신선의 경지를 찾을 수 있으니 추위를 맞으며 월궁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李白, <月下獨酌>, “내가 노래하니 달은 배회하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는 어지럽다(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 照無眠: 잠 못 이루는 이를 비추네. 달빛이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한다.  

. 此事: 혈육들과 도란도란 상봉하는 기쁨이 있으며 날이 맑고 달도 둥근 때, 곧 만사 완전무결할 때.

. 嬋娟(선연): 달을 가리킨다. 옛날, 자주 미녀를 달에 비유하고 있다.

. 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의미는 다음과 같다. 다만 아우와 나 모두 건강, 장수하여, 지금 비록 천리 먼 곳에 떨어져 있지만, 함께 같은 달 감상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창작시기] 41세(熙寧9년, 丙辰, 1076) 중추절에 밀주(密州)에서 지었다.


[해제]


상편(上片)에서는 달을 향하며 술을 마심을, 하편(下片)에서는 밝은 달을 대하며 아우를 그리워함을 묘사하고 있다. 상편에서는 하늘을 향해 묻는 것을 발단으로, 현실지향과 현실세간을 벗어남 간의 모순을 돌출시키고 있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냐고/ 술잔 들고 푸른 하늘에게 물어본다(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라는 우문은 실은 현실생활에 대한 극도의 고민스런 심정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하늘을 지향하고자 하는 순결성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끝내 인간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은 즉 인생에 대한 미련도 표현하고 있다.

하편(下片)은 “달에게 물음”으로부터 정감과 철리의 모순을 돌출시키고 있다. 이는 곧 아우에 대한 그리움의 정감과 인생철리 간의 모순이다. “어이하여 늘 이별해 있을 때만 둥근가(何事長向別時圓)”라는 우문은 아우를 그리워하는 감정이다. 이어서 인생의 만남과 이별은 마치 밝은 달의 차고 이지러짐과 같아 원래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낙관적이고 광달적(曠達的)인 축원으로 맺고 있다.

전체 사는 아득하고 서글픈 분위기가 휩싸고 있다. 그러나 그 경지가 광대하고 심오하며, 철리적인 정취가 풍부하여 중추사(中秋詞)에 있어서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이다.(王王)


[평설]


愚案: 이 사(詞)는 동파가 수도 정계(政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이 성미에 맞지 않아 지방관리로 이임을 자청하여 항주(杭州)에서 3년을 지내고, 다시 현재의 산동성에 위치한 밀주(密州)지주로 재직할 때의 작품이다.

이는 중추절 달 소재 사(詞)의 압권(壓卷)이다. 전반부에서 우선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천상의 궁궐로 올라가고픈 마음이 있으나 너무 높아 추위를 못 견딜까봐 다시 지상의 세계로 돌아오고 있다. 이에는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한편 천상의 궁궐은 바로 동파가 수년 전까지 몸담았던 수도, 곧 정치 중심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곳 정계는 회오리바람이 너무 거세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바로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을 대변하고도 있다. 이어서 달 아래에 서 있는 자신의 현실로 귀환하고 있다. 일어나 춤을 추며 달 그림자 희롱하니 인간 세상에 있지 않은 듯 여겨지기도 한다.

후반부에서는 먼저 달빛의 이동을 묘사하고 있다. 달빛은 붉은 누각을 돌아 비단 창문에 나지막하게 드리우며 잠 못 들어하는 작자를 비추고 있다. 달밤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은 그만큼 다정다감하다는 반증이며, 뭔가 번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달은 언제나 생활에 충만감을 느낄 때보다는 이별해 있을 때처럼 뭔가 가슴이 비어있을 때 더욱 크고 둥글게 보인다.

사람에겐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悲歡離合)이 있고, 달에겐 흐림과 맑음, 둥금과 이지러짐(陰晴圓缺)이 있다. 일견 당연하게 보이는 이 시어에는 철리(哲理)가 깔려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변화를 의미하며 변화하지 않으면 생동감이 없다. 변화 속에서만이 인생이 깊어지고 확장되게 된다. 슬픔만 있다거나 기쁨만 있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에도 비환이합(悲歡離合)이나 음청원결(陰晴圓缺)이 순환하고 있다. 이렇듯 세파(世波)에 시달리다보면 성숙하게 되고 사유도 깊어져 가게 된다.

그는 오래도록 살아서 형제가 천리 먼 곳에서라도 함께 밝은 보름달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情)과 리(理)가 어우러져 음미할만하다.



* 저자소개: 蘇東坡


소동파(蘇東坡: 1036-1101)는 본명이 소식(蘇軾)이며,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그는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 예술가로서도 유명하지만, 천재적 자유정신과 재주, 꾸준한 노력,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으로 훌륭한 문학작품을 창작해낸 대문호로서 더욱 알려졌다.

자유정신과 이성적 사유, 그리고 개성을 중시했던 북송의 문화와 문학정신, 시대정신이 그에게 역력히 구현되어 있다. 문학의 경우,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이다.

또한 그는 경학(經學)․고고학․음식 만들기․술의 제조․차(茶)의 품평․서예․그림, 그리고 예술감식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 역주자 소개


曹圭百


韓國外國語大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成均館大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그리고 民族文化推進會 국역연수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 제주교대 강사를 역임했다.

現在 濟州觀光大學 중국어통역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실적으로는 󰡔中國의 文豪 蘇東坡󰡕(역주), 󰡔소동파산문선󰡕(역주), 󰡔제주관광중국어회화(상, 하)󰡕, 󰡔史記世家(下)󰡕(공역), 󰡔千字文註解(前) - 아들을 위한 천자문󰡕 등의 역저서와, <󰡔詩經․鄭風󰡕 愛情詩 小考>, <蘇軾詩硏究>, <出仕와 隱退間의 갈등과 그 解消 - 蘇軾詩의 한 斷面>, <陶淵明에의 同一化樣相과 陶詩의 創造的 受容 - 蘇軾詩의 한 斷面>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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