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소동파시선 –
사환전기(仕宦前期)
3. 삼유동을 노닐며
遊三游洞
부슬부슬 내리는 진눈깨비 눈 반 비 반 이어
구경꾼은 신발이 얼어 푸른 이끼에 미끄러진다.
이불 안고 가 바위 밑에서 자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나
동굴 어귀에 구름이 짙어 밤에 달을 볼 수 없다네.
凍雨霏霏半成雪, 遊人屨凍蒼苔滑.
不辭攜被巖底眠, 洞口雲深夜無月.
(권1)
「주석」
. 三游洞(삼유동): 호북성 의창현(宜昌縣) 서북쪽 협주(峽州)에 있는 동굴. 일찍이 당대(唐代)에 백거이(白居易)가 충주자사(忠州刺史)를 제수(除授)받고, 백행간(白行簡) ․ 원진(元稹)과 함께 이 동굴에서 노닐며 각기 고시 20운(韻)을 지어 석벽에 써 놓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 不辭攜被巖底眠(불사휴비암저면): 이불을 안고 가 바위 밑에서 자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나. 이불을 안고 가 바위 밑에서 잤다는 의미이다.
「해제」
이는 소동파가 24세(嘉祐4년, 1059년) 겨울, 아우 소자유(蘇子由: 蘇轍)와 함께 부친 소순(蘇洵)을 따라 장강을 따라 형주(荊州)로 남행(南行)하는 도중에 지은 시로, 진눈깨비 내리는 겨울 날씨에 삼유동(三游洞)을 구경하고 그 감회를 읊은 것이다.
4. 이양을 아침 일찍 떠나며
浰陽早發
부귀는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니거늘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영화롭게 되거나 시들게 된다.
요란스럽게 명성을 사모하는 마음
아! 어찌 유독 나에게만 없을 손가?
물러나 위축될 수는 없으나
단지 조급하게 앞으로 나아감을 경계한다.
나의 행로는 서촉 고향을 그리워하나
이미 황폐해진 전원과는 멀어졌다.
남쪽으로 온 것 마침내 무엇 때문인가?
변변찮게 상인의 수레 따라왔다.
나의 나아감 진실로 나라에 보탬이 없다면
이는 게으르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인생은 의기를 소중히 여기는 법
출사와 은퇴가 어찌 헛된 장난이겠는가?
길이 강양의 노인을 사모하나니
연뿌리 심어 봄이면 호수에 가득하리.
富貴本无定, 世人自榮枯.
囂囂好名心, 嗟我豈獨無.
不能便退縮, 但使進少徐.
我行念西國, 已分田園蕪.
南來竟何事, 碌碌隨商車.
自進苟無補, 乃是懶且愚.
人生重意氣, 出處夫豈徒.
永懷江陽叟, 種藕春滿湖.
(권2)
「주석」
. 浰陽(이양): 호북성 종상현(鍾祥縣)에 있던 고을. 여양(麗陽).
. 但使進少徐(단사진소서): 다만 나아감을 조금 서서히 하겠다.
. 江陽(강양): 미주(眉州). 소동파의 고향.
「해제」
형주(荊州)에서부터는 육로를 따라 수도 개봉(開封)을 향해 길을 떠난다. 이는 호북성 이양(浰陽)을 떠나면서 지은 시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나 자신은 이미 출사의 길을 선택하여 고향 전원과는 멀어졌다. 인생은 의기를 소중히 여기는데, 여기서는 출사의 길을 향하여 가면서도 고향에 은거할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5. 밤 행로에 별을 보고서
夜行觀星
하늘은 높고 밤기운 냉냉한데
수많은 별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 별은 빛을 우리에게 쏘고
작은 별은 끓어오르듯 반짝반짝.
하늘과 사람은 본래 상관 않는 것이니
아! 저 별들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세속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것들을 가리키어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남쪽의 기성(箕星)과 북쪽의 북두칠성은
원래 가정에서 쓰는 그릇이름에서 유래한다
하늘에도 어찌 그런 것이 있을까
아마 우리 세인들이 그렇게 불렀을 뿐인 것을.
만약 별 가까이 가서 관찰해보면 어떨까
멀리서 보고 상상하니 우연히 비슷한 점이 있는 것
천도는 광대무변하여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라
나로 하여금 긴 한숨 쉬게 하는구나.
天高夜氣嚴, 列星森就位.
大星光相射, 小星鬧若沸.
天人不相干, 嗟彼本何事.
世俗强指摘, 一一立名字.
南箕與北斗, 乃是家人器.
天亦豈有之, 無乃遂自謂.
迫觀知何如, 遠想偶有似.
茫茫不可曉, 使我長歎喟.
(권2)
「주석」
. 箕(기): 28수(宿)의 하나. 키.
. 北斗(북두): 북두칠성. 국자 모양의 별.
「해제」
이는 밤길에 별을 보고 미지의 우주에 대한 느낌을 이지적으로 읊은 시이다. 별이라는 우주의 형상까지 시의 제재가 확대되고 있다. 작자는 자기 자리를 지키고 빛을 발하는 별을 관찰하여 그 형상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과 사람은 서로 간여하지 않는 것인데, 사람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별들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하고 있다. 사람과 하늘의 관계 여부는 여기서 논할 바가 아니나, 전반적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건전한 상식에 근거한 이성적 사유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그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세계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불가지(不可知)의 것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있다.
* 저자 소개
소동파
소동파(1036-1101, 음력)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북송(北宋)은 중국의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로 자유스런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였으며, 유불도(儒佛道)사상이 합류(合流)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의 문학영역은 물론 서법, 회화, 의학, 경학(經學),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유가(儒家)임을 자부하면서도 도가와 불가사상에 대해서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동파는 송시(宋詩)의 전형적인 특성을 확립시킨 시인이며, 산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고, 삶의 지혜를 밝혀 낼 만큼 깊으며, 자유분방하다. 또한 신선함, 통찰력, 그리고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고가 깊고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있으며 기지가 있다. 사대부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유불도 사상이 합류되어 있고, 인생철리가 함유되어 있다. 거시적 미시적 안목을 두루 갖춘 그의 문학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 역자 소개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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