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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소동파시선 사환전기(仕宦前期) 2. 굴원탑 (屈原塔) 명성은 참으로 끝이 없고 부귀는 잠시 끊는 물 같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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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2. 굴원탑 (屈原塔)


초나라 사람이 굴원을 슬퍼했는데
천년이나 그 뜻이 다하지 않았네.
혼백이 표연히 어느 곳에 떠돌까?
늙은이들 공연히 목메어 운다.


지금까지 푸른 강가에서는
밥 던져 굴원의 기갈을 구해 주고
옛날부터 이어온 풍습으로 용선(龍船) 경주하는데
구슬픈 부르짖음 초 땅의 산이 찢어질 듯하구나.


굴원은 옛날의 절개 있는 선비로서
죽음에 임하여 뜻 더욱 매서웠네.
세속에서 그 뜻 어찌 알았으리.
임금 그리며 차마 결단치 못했음을


남빈(南濱)은 옛날에 초(楚) 나라에 속한 곳
산 위에 옛 탑이 남아 있다.
응당 부처님 모시는 사람이
그대의 자취 없어질 까봐 세운 것이리라.


이일은 고증할 수 없어도
그 뜻은 실로 간절하다.
옛사람 뉘라서 죽지 않았으랴?
왜 굳이 목숨의 길고 짧음 비교할 필요 있을까.


명성은 참으로 끝이 없고
부귀는 잠시 끓는 물 같거늘
대부 굴원은 이 이치를 알고서
죽음으로서 절개를 지킨 것이라.


楚人悲屈原, 千載意未歇.
精魂飄何處, 父老空哽咽.
至今滄江上, 投飯救飢渴.
遺風成競渡, 哀叫楚山裂.
屈原古壯士, 就死意甚烈.
世俗安得知, 眷眷不忍決.
南賓舊屬楚, 山上有遺塔.
應是奉佛人, 恐子就淪滅.
此事雖無憑, 此意固已切.
古人誰不死, 何必較考折.
名聲實無窮, 富貴亦暫熱.
大夫知此理, 所以持死節.
(권1)


「주석」


. 屈原(굴원): 대략 BC340-BC278년. 초(楚)나라의 삼려대부(三閭大夫), 위대한 애국시인. 참소를 입어 멱라강에 빠져 죽었다.
. 滄江(창강): 푸른 강물. 널리 ‘강물’을 가리킨다.
. 投飯(투반): 오균(吳均)의 『속제해기(續齊諧記)』에, “굴원이 5월 5일에 멱라강에 빠져 죽었는데 초나라 사람이 그를 애도하여 이 날이 되면 대나무 통에 쌀을 담아 물 속에 던져서 제사지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 競渡(경도):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5월 5일에 강 건너기 경주를 하는데, 세속에서는 굴원이 멱라강에 투신하던 날을 정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러므로 아울러 배를 타고 가서 그를 건지도록 명령하였다”고 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용선(龍船) 경기가 열린다.
. 南賓(남빈): 지금의 충주(忠州).
. 考折(고절): 장수(長壽)와 요절(夭折).


「해제」


이는 소동파가 24세(嘉祐4년, 1059년) 겨울, 아우 소자유(蘇子由: 蘇轍)와 함께 부친 소순(蘇洵)을 따라 장강을 따라 남행(南行)하는 도중에 충주(忠州)의 굴원탑(屈原塔)에 들러 지은 시이다. 동파의 자주(自注)에, “(굴원탑은) 충주(忠州)에 있다. 원래 이곳에 굴원의 비석과 탑이 서 있음은 옳지 않다. 아마 후세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것일 것이다(在忠州, 原不當有碑塔於此, 意者後人追思, 故爲作之).”라고 추정하고 있다. 굴원의 헌신적인 정신을 칭송함과 동시에,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킨 행적을 추모하고 있다. 인간에게 귀한 것은 명예와 절조에 있다. 부귀는 눈을 스쳐 가는 연기와 구름 같은 것이다.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진 것은 바로 절개를 굳게 지킨 결과였다.(王2)







* 저자 소개
소동파


소동파(1036-1101, 음력)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북송(北宋)은 중국의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로 자유스런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였으며, 유불도(儒佛道)사상이 합류(合流)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의 문학영역은 물론 서법, 회화, 의학, 경학(經學),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유가(儒家)임을 자부하면서도 도가와 불가사상에 대해서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동파는 송시(宋詩)의 전형적인 특성을 확립시킨 시인이며, 산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고, 삶의 지혜를 밝혀 낼 만큼 깊으며, 자유분방하다. 또한 신선함, 통찰력, 그리고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고가 깊고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있으며 기지가 있다. 사대부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유불도 사상이 합류되어 있고, 인생철리가 함유되어 있다. 거시적 미시적 안목을 두루 갖춘 그의 문학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 역자 소개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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