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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소동파시선 사환전기(仕宦前期) 인생가는길 기러기 눈 진흙 밝는 것 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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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2. 자유의 ‘면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에 화답하여

和子由澠池懷舊


인생 가는 길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

응당 나르는 기러기 눈 진흙 밟는 것 같겠지.

눈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겨 놓았지만

기러기 날아가면서 어찌 날아갈 방향을 헤아리겠는가?


노승은 이미 열반에 들어 새 사리탑 들어섰고

허물어진 담 벽에는 우리가 쓴 옛 시구 찾을 길 없네.

지난 날 험했던 길 아직 기억하는가?

길은 먼데 사람은 지치고 절름거리는 나귀는 울부짖었었지.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老僧已死成新塔, 壞壁無由見舊題.

往日崎嶇還記否, 路長人困蹇驢嘶.

(권3)


「주석」


.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면지회구): 자유(子由)의 「회면지기자첨형(懷澠池寄子瞻兄)」시에 화답하여. 면지(澠池): 지금의 하남성 면지현(澠池縣) 서쪽.

.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 기러기 날아가면서 어찌 다시 동쪽으로 갈지 서쪽으로 갈지 헤아렸으리오.

. 老僧(노승): 봉한화상(奉閑和尙).

. 新塔(신탑): 새로운 불탑(佛塔). 스님이 죽은 뒤에는 탑을 세워 화장한 뼈의 재와 사리를 보관한다.

. 無由(무유): 할 길이 없다.

. 往日崎嶇還記否, 路長人困蹇驪嘶(왕일기구환기부, 노장인곤건려시): 소식자주(蘇軾自注), “예전에 말이 이릉에서 죽어, 나귀를 타고서 면지에 도착했다(往歲馬死于二陵, 騎驢至澠池)”. 왕세(往歲)는 21세(嘉祐元年, 1056년), 동파 형제가 부친 소순(蘇洵)을 모시고 과거시험을 보려고 첫 번째로 촉(蜀)으로부터 변경(汴京)으로 갈 때이다.


「해제」


26세(嘉祐6년, 1061년), 동파가 정주(鄭州)에서 자유(子由)와 이별하고 봉상첨판(鳳翔簽判)의 임지로 가는 도중에 5년 전에 왔었던 면지(澠池)를 지나며 아우 소철(蘇轍)의 「회면지기자첨형(懷澠池寄子瞻兄)」 시에 화운(和韻)한 작품이다. 이 시는 5년 전 면지(澠池)에서의 일에 대한 회고를 통해 인생의 우연성 ․ 불확실성 ․ 유한성 및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체득과 관조를 토로한 것이다. 특히 전반부 4구는 동파시의 대표격의 하나로 가히 압권(壓卷)이라 할 수 있다.

전반부(1-4구)에서는 ‘기러기가 눈 진흙땅에 발자국을 남겨놓고는 어느 방향으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생동적인 비유로 인생이 우연성 ․ 불확실성 가운데 자기도 정확히 모를 미래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인생철리를 개괄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선적(禪的)인 깨달음이다. 인생은 무한한 선택의 순열 중에 하나하나를 선택하여 가는 과정이다. 인생에서 미리 정해진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동파는 인생이란 기러기가 눈 진흙에 발자국을 남기듯이 순간의 궤적을 남기고 불확실한 미래의 길을 걷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정처 없는 나그네와 같은 삶의 길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후반부(5-8구)에서는 지난 날 여행체험을 회상하여 인생의 유한성을 예증하고 있다. 동파는 5년 전인 21세(嘉祐元年, 1056년)에 아우 소철과 함께 부친을 따라 과거응시를 위해 면지(澠池)의 승(僧) 봉한(奉閑)의 승방에 묵었었다. 이제 다시 오니 당시의 노승은 이미 죽어 사리탑으로 화하고 시구를 적어 두었던 벽도 허물어져 버렸다. 이를 통해 인생의 유한성을 통찰하고 있다. 사람(僧 奉閑)의 생시(生時)로부터 죽음으로의 변화, 5년 전 제시(題詩)해 두었던 벽의 무너짐, 즉 ‘인멸(人滅)’과 ‘물실(物失)’의 변화과정은 비애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구체적 행적이 사라짐에 대한 비애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당시 갈 길은 먼데 사람은 지치고 노새도 울부짖던 행로의 어려움을 인생길의 험난함으로 슬며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애를 전반부에서의 선적(禪的) 철리로써 극복하고 있다. 그가 가정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된 불교에 대하여 아직 인식이 초보단계에 있었던 26세 때의 작품인데도 인생역정을 두루 거친 듯한 원숙한 풍취가 배어 나오고 있다. 또한 화운시(和韻詩)라는 운(韻)에 따른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거침없이 자신의 심사를 표현한 그의 창작능력이 일품이다.



소동파시선 –

사환전기(仕宦前期)


* 저자 소개

소동파


소동파(1036-1101, 음력)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북송(北宋)은 중국의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로 자유스런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였으며, 유불도(儒佛道)사상이 합류(合流)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의 문학영역은 물론 서법, 회화, 의학, 경학(經學),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유가(儒家)임을 자부하면서도 도가와 불가사상에 대해서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동파는 송시(宋詩)의 전형적인 특성을 확립시킨 시인이며, 산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고, 삶의 지혜를 밝혀 낼 만큼 깊으며, 자유분방하다. 또한 신선함, 통찰력, 그리고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고가 깊고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있으며 기지가 있다. 사대부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유불도 사상이 합류되어 있고, 인생철리가 함유되어 있다. 거시적 미시적 안목을 두루 갖춘 그의 문학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 역자 소개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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