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수형
소동파사선 50. 숲을 뚫고 나뭇잎 때리는 빗소리엔 개의치 말고
定風波(莫聽穿林打葉聲)
3월 7일, 사호(沙湖)로 가는 도중에 비를 만났는데, 우비를 가진 이가 앞서 갔으므로 동행자들은 모두 허둥지둥 했으나 나는 유독 낭패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윽고 드디어 날이 개어 이 사(詞)를 짓는다
숲을 뚫고 나뭇잎 때리는 빗소리엔 개의치 말고
읊조리며 빗속을 어정어정 거니는 것이 어떠랴.
죽장(竹杖)에 짚신신고 걷는 게 말타기보다 경쾌한데
무엇이 두려우랴!
안개비 속에 도롱이 입고 한 평생 살아가리.
쌀쌀한 봄바람에 술기운 깨니
몸은 약간 썰렁하고
산꼭대기 석양은 나를 맞는데
지금껏 쏴 비바람 불었던 곳을 되돌아보누나.
돌아가리라
풍우가 있다고 슬플 것도 개여도 좋을 것도 없다.
[원문]
三月七日, 沙湖道中遇雨, 雨具先去. 同行皆狼狽, 余獨不覺. 已而遂晴, 故作此詞
莫聽穿林打葉聲.
何妨吟嘯且徐行.
竹杖芒鞋輕勝馬.
誰怕.
一蓑煙雨任平生.
料峭春風吹酒醒.
微冷.
山頭斜照却相迎.
回首向來蕭瑟處.
歸去.
也無風雨也無晴.
[주석]
. 沙湖: 지금의 호북성 黃岡 동남 30리에 있다.
. 雨具先去: 雨具를 가진 사람이 먼저 갔다.
. 已而: 얼마 후.
. 吟嘯: 魏晉시대의 士人들은 입을 오므리고 길게 휘파람을 불어 소탈함을 표시하였다.
. 芒鞋(망혜): 짚신.
. 料峭: 으슬으슬하다. 쌀쌀하다. 봄바람에 싸늘한 기운이 있는 모양.
. 微冷. 山頭斜照卻相迎: 봄바람은 조금 썰렁하고, 태양은 이미 산머리에서 비껴 비추어 마치 우리를 맞이하는 것 같다. 비가 지나가고 날씨가 개임을 묘사하고 있다.
. 蕭瑟(소슬): 초목이 비가 오자 흔들리는 소리. 쏴.
. 回首向來蕭瑟處. 歸去. 也無風雨也無晴: 자신의 담담한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 자연적인 비바람이든지 정치적인 비바람이든지 흐리고 비가 오든지 맑은 날씨든지 전연 개의하지 않는다. 동파가 만년 해남도에서 지은 <獨覺>시에도, “回首向來蕭瑟處, 也無風雨也無晴”구가 있다.
[창작시기] 47세(元豐5년, 壬戌, 1082)에 黃州에서 지었다.
[해제]
전체 사는 비가 내림으로부터 개임에 이르기까지, 험함을 쉽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태연자약한 동파의 생활태도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비가 내려도 두려워하지 않고 날씨가 맑아도 기뻐하지 않는, 곧 영욕(榮辱)과 득실(得失)을 초월하는 깨달음의 인생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비가 내리고 맑아지는 자연으로부터 계시 받은 인생철학은 실제로는 그가 벼슬길에서 풍운(風雲)이 지난 다음에 내적으로 성찰하고 깨달은 결과이다.(王王)
비바람 속을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고 함은 곤란한 경우에 있어서도 태연한 태도를 잃지 않고, 실의의 상황에 빠지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는 정신의 표현이다. 그의 사상적 무기가 불로(佛老)철학에 있음은 분명하다.(王)
[평설]
愚案: 수풀을 뚫고 잎새를 때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읊조리며 빗속을 천천히 거니는 것이 좋다. 말을 타기보다는 죽장에 짚신을 신고 걷는 것이 훨씬 더 경쾌하다. 이러한 범인의 상식을 뒤엎는 말로서 상편을 시작하고 있다. 쉬운 것보다는 보다 어렵지만 절실한 체험을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 하에 안개비 속에 도롱이 옷 입고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이다. 열악한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 저자소개: 蘇東坡소동파(蘇東坡: 1036-1101)는 본명이 소식(蘇軾)이며,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그는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 예술가로서도 유명하지만, 천재적 자유정신과 재주, 꾸준한 노력,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으로 훌륭한 문학작품을 창작해낸 대문호로서 더욱 알려졌다.자유정신과 이성적 사유, 그리고 개성을 중시했던 북송의 문화와 문학정신, 시대정신이 그에게 역력히 구현되어 있다. 문학의 경우,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이다.또한 그는 경학(經學)․고고학․음식 만들기․술의 제조․차(茶)의 품평․서예․그림, 그리고 예술감식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 역주자 소개 조규백 曹圭百韓國外國語大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成均館大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그리고 民族文化推進會 국역연수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 제주교대 강사를 역임했다.現在 濟州觀光大學 중국어통역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연구실적으로는 中國의 文豪 蘇東坡(역주), 소동파산문선(역주), 제주관광중국어회화(상, 하), 史記世家(下)(공역), 千字文註解(前) - 아들을 위한 천자문 등의 역저서와, <詩經․鄭風 愛情詩 小考>, <蘇軾詩硏究>, <出仕와 隱退間의 갈등과 그 解消 - 蘇軾詩의 한 斷面>, <陶淵明에의 同一化樣相과 陶詩의 創造的 受容 - 蘇軾詩의 한 斷面>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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