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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당시삼백수 정선 4. 贈衛八處士위팔처사(衛八處士)에게 주다, 두보(杜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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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4. 贈衛八處士위팔처사(衛八處士)에게 주다

杜甫(두보)

사람이 살면서 서로 만나지 못함이여

얼핏 황혼과 새벽에 따로 뜨는 삼성(參星)과 상성(商星) 같구나.

오늘 저녁은 또 어떠한 저녁이길레

함께 등잔불 아래 모였구나.

젊은 시절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 둘 다 귀밑머리가 이미 허옇게 세었구나.

옛 친구 찾으니 절반이나 귀신이 되었다기에

놀라 부르짖다가 속이 끓는다.

어찌 알았으리? 이십년 세월 흘러

다시 그대 집을 찾아올 줄을.

예전에 이별할 땐 그대 총각이었는데

어느새 아들딸이 줄을 이었구나.

아버지의 친구인 내게 반가이 공대하며

“어디서 오셨지요?” 라고 묻는다.

주고받는 인사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술상을 차려 내오네.

밤비 속에 봄 부추를 잘라오고

새로 지은 밥에는 메조를 섞었더라.

주인은 “만나기가 어렵구나”라고 말하며

연거푸 술을 열 잔이나 들이킨다.

열 잔 술에도 취하지 않으니

그대의 깊은 옛 정 느낄만하네.

내일이면 헤어져 높은 산을 사이에 둘 터

세상일이 그대나 나나 아득하도다.

 

人生不相見, 動如參與商.

今夕復何夕, 共此燈燭光.

少壯能幾時, 鬢髮各已蒼.

訪舊半爲鬼, 驚呼熱中腸.

焉知二十載, 重上君子堂.

昔別君未婚, 兒女忽成行.

怡然敬父執, 問我來何方.

問答未及已, 兒女羅酒漿.

夜雨剪春韭, 新炊間黃粱.

主稱會面難, 一擧累十觴.

十觴亦不醉, 感子故意長.

明日隔山岳, 世事兩茫茫.

당시삼백수 정선 두보 동영상.

이 시는 건원(乾元) 2년(759: 두보 48세)), 두보가 화주사공참군(華州司功參軍) 시절에 지었다. 당시 전란과 흉년을 만났는데, 옛 친구와 상봉하니 그 감개가 깊다.

衛八(위팔): 팔(八)은 형제 사이의 서열. 배항(排行). 배항은 형제자매의 장유(長幼)의 순서를 말한다. 보통 형제는 형제끼리만 자매는 자매끼리만의 순서를 말하는데, 이것을 ‘소배항(小排行)’이라 하고, 대가족에서 형제, 자매, 종형제 자매를 모두 포함한 순서를 ‘대배항(大排行)’이라고 한다.

處士(처사): 벼슬하지 않은 선비. 은사(隱士).

(동): 왕왕. 걸핏하면.

參與商(삼여상): 삼성(參星)과 상성(商星). 삼성(參星)은 해 질 무렵 서방에 상성(商星)은 해 뜰 무렵 동방에 각기 하늘 한 쪽에 있어, 한 별이 뜨면 다른 한 별은 진다. 그러므로 서로 만날 수 없다.

今夕復何夕(금석부하석): 󰡔시경(詩經)․당풍(唐風)󰡕, 「주무(綢繆)」, “오늘은 어느 밤이길래, 이 님을 만났는가(今夕何夕, 見此良人).”

(창): 회백색. 희끗희끗.

訪舊(방구): 옛 친구의 소식을 수소문해 봄. 옛 친구를 방문하다.

半爲鬼(반위귀): 절반은 귀신이 되다. 절반은 이미 죽었다.

熱中腸(열중장): 창자 속이 뜨거워진다. 속이 끓는다. 속마음이 격동된다. ‘중장(中腸)’은 ‘장중(腸中)’과 같다.

君子(군자): 위팔처사(衛八處士)를 가리킨다.

(항): 줄 항.

怡然(이연): 화열(和悅)한 모양. 기쁜 마음으로. 기쁠 이.

父執(부집): 아버지의 친구. 집(執)은 집우(執友: 뜻이 같고 道가 서로 통하는 친구)의 생략형.

未及已(미급이): 어떤 판본에는 “내미이(乃未已)”라 했다.

兒女(아녀): 제16구. 어떤 판본에는 “구아(驅兒)”라 했다.

羅酒漿(라주장): 술자리를 차리다.

新炊(신취): 새로 지은 밥.

(간): 섞다.

黃粱(황량): 메좁쌀. 황소미(黃小米).

主人(주인): 여기서는 위팔처사를 가리킨다.

(루): 연거푸.

十觴(십상): 열잔. 많은 술잔을 가리킨다.

一擧累十觴(일거루십상): 연거푸 술을 열 잔이나 들이킨다.

(자): 그대. 위팔처사를 가리킨다.

故意(고의): 옛 친구의 정.

世事兩茫茫(세사량망망): 세상일이 그대나 나나 아득하다. 세상일과 우리 둘 다 장차 어찌 될는지 헤아릴 수 없다.

작가.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이고, 원적(原籍)은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성 襄樊)이다. 그의 13세조(世祖)는 두예(杜預)로서, 경조 두릉(京兆杜陵: 지금의 섬서성 長安縣 동북) 사람이다. 그러므로 두보는 자칭 두릉포의(杜陵布衣)”라고 했다. 증조부는 공현(鞏縣: 지금의 하남성 鞏義)로 이사를 갔다. 두보는 일찍이 장안성 남쪽 소릉(少陵) 부근에 거주한 적이 있다. 그래서 또 자칭 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하여, “두소릉(杜少陵)”이라고 불렸다. 후에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맡은 적이 있어, 후세에 두공부(杜工部)”라고 칭해졌다. 두보는 중국 고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정치군사사회의 상황을 전면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사(詩史)”라고 했다. 후인들은 그와 이백(李白)을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했다.

역주소개.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 己百.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國立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 중국 南京大學 중문과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故 硏靑 吳虎泳 老師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학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역서로 『중국의 문호 소동파』(역주), 『소동파산문선』(역주), 『소동파사선(蘇東坡詞選)』(역주), 『제주관광중국어회화(상하)』(공저), 『史記世家(하)』(공역), 『천자문주해(前) - 아들을 위한 천자문』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蘇軾詩硏究」(박사논문), 「『詩經 ․ 鄭風』 愛情詩 小考」, 「출사와 은퇴 간의 갈등과 그 해소 - 蘇軾詩의 한 단면」, 「陶淵明시에의 동일화 양상과 陶詩의 창조적 수용 - 蘇軾詩의 한 단면」, 「蘇軾詩에 나타난 현실세계와의 괴리와 그 해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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