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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종묘 종묘제례악 옛날 사진, 영녕전, 정전, 보태평, 전폐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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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 더 이상 종묘에서 모실 수 없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태종이 건립하였다. 사진 이수형

Jongmyo is a Confucian shrine dedicated to the perpetuation of memorial services for the deceased kings and queens of the Korean Joseon Dynasty (1392–1897). According to UNESCO, the shrine is the oldest royal Confucian shrine preserved and the ritual ceremonies continue a tradition established in the 14th century. Such shrines existed during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eriod (57-668), but these have not survived. The Jongmyo Shrine was added to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in 1995.

Jongmyo is adjacent to Changdeokgung and Changgyeonggung in the south. They used to be connected in the Joseon period, but were separated by a road built by Japanese colonialists. Nowadays there is a construction plan to recover the original structure of the shrine.

The main buildings of Jongmyo was constructed in October, 1394 when Taejo, first king of Joseon Dynasty, moved the capital to Seoul. It was destroyed by fire in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1592–98), then rebuilt in 1608.

1922년 일시 귀국한 영친왕이 종묘에 제사를 드리러 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 오른쪽 보이는 돌담 옆으로 사진 중앙을 가르는 단이 져있다. 사진 오른쪽에 단 위에는 제례복 입은 남자가 걸어가고 있으며 그 뒤로 영친왕(英親王, 1897~1970년)이 구장복 차림으로 단 아래 군복 입은 인물이 들고 있는 햇빛가리개의 씌움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다. 그 외에도 궁중인물 주변에서 군복을 입은 여러명의 남자들이 단 아래위에서 호위하며 걸어가고 있다. 서울 종묘 (일제강점)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종묘는 저선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다. 궁궐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죽음의 공간이자 영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선왕조이 신전이다. 

현종 2년 (1836년) 정전 4칸을 더하여 19칸으로 증축했고 영녕전은 2칸식 중측하여 현재의 규모 16칸을 갖추 종묘의 마지막 증축이다. 조선왕조의 종말과 함께 정전과 영녕전의 신실이 모두 채워지고 더 이상 빈공간이 없어졌다. 정전의 마지막 신실인  제 19실 순종을 모셨고, 영녕전의 마지막 칸에는 영친왕을 모시면서 16개의 신실이 다 찼다. 왕조의 종말은 거의 운명적이었다. 

종묘예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1 유홍준)

건축가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컬처그라피2012)에서 고백했다.하나는 루이스 칸 이설계한 소크연구소였고 도 하나는 종묘였다"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엔 종묘가 있다" 시라이 세이이치. 

프랑크 게리 "한국인은 이 건물에 감사해야 한다" , "이같이 장엄한 공산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려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일까?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미니멀리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플하고 스트롱하지만 미니멀리즘이 아니다. 간단한 것을 미니멀리즘이라고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데, 미니멀리즘은 감정을 배제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것엣는 살아 있는 느김이 든다. 당시 이것을 만든 사람들의 감성과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 

서울종로 종묘와 경복궁 등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종묘제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종묘 제례 관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종묘 전경 출처 수원광교박물관 일제강점기 때 우편엽서 동문 담장옆으로 나무가 없다.
정전 동문 으로 신도가 깔려있다. 지금은 소나무와 단풍들이 우거져 길이 아름답다.
동문 신도 길옆 소나무가 정전 담장 을 너머 정전을 바라보는듯 하다.
나무 사이로 정전 남문 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는 남문 담장앞으로 나무가 더 많아보인다.
종묘제례 관람장면 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종묘제례 진설상 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종묘제례에서 당피리를 부는 악사들 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종묘제례에서 편종을 연주하는 악사 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전폐회문 영상 듣기

02_전폐_희문_Jeonpye_huimun.mp4
7.46MB

전폐회문 은 시관례와 초헌례 사이에 신에게 예물을 올리는 전폐래 때 연주되는 회문 이라는 곡으로 종묘제례악 무대 공연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라 한다. 보태평 11곡 중 첫번째 곡인데 팀포가 느리다 이 곡의 악장은 조상들이 폐백을 받고 기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자 20자로 되어있다.  리듬과 변화 가 없으면서도 묵직하고 경건한 느낌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독특한 음악. "전폐희문  출처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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