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 시선 오직 저녁 갈가마귀 만이 나그네 뜻을 아는 듯놀래 푸드덕 날아가니 설화(雪花) 천 조각이 찬 나뭇가지에서 떨어진다.
사진 이수형
12. 12월 14일 밤, 눈이 조금 내렸는데, 그 다음날 새벽 남계로 가 술을 조금 마시고 저녁까지 늦어졌다
十二月十四日夜, 微雪, 明日早, 往南溪, 小酌至晩
남계에서 눈 맞으니 참으로 무한한 가치가 있구나
말 타고 달려가 보니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
홀로 개암나무 숲 헤치고 사람 발자국 찾아
아무도 밟지 않은 첫새벽 눈길 주교(朱橋)를 지난다.
뉘라서 집이 허물어져 갈 곳 없는 백성의 신세를 불쌍히 여기랴
마을 사람들 배고파 가만히 말할 기운도 없음을 즉시 깨닫네.
오직 저녁 갈가마귀 만이 나그네 뜻을 아는 듯
놀래 푸드덕 날아가니 설화(雪花) 천 조각이 찬 나뭇가지에서 떨어진다.
南溪得雪眞無價, 走馬來看及未消.
獨自披榛尋履迹, 最先犯曉過朱橋.
誰憐屋破眠無處, 坐覺村飢語不囂.
惟有暮鴉知客意, 驚飛千片落寒條.
(권4)
「주석」
. 無價(무가): 무한한 가치가 있다.
. 誰憐屋破眠無處(수련옥파면무처): 두보(杜甫)의 시 「초가집이 가을바람에 부서진 것을 노래함(茅屋爲秋風所破歌)」의 다음 구절을 사용하고 있다. “천장에 비 새어 침대엔 마른자리 없건만, 장대 같은 빗방울 그칠 줄 모른다. 난리 겪어 잠마저 이룰 수 없는데, 긴 밤비에 젖어 언제쯤이나 날이 샐까 기다린다(牀頭屋漏無乾處, 雨脚如麻未斷絶. 自經喪亂少睡眠, 長夜沾濕何用徹.) 여기에서는 두보의 시구를 그대로 빌려 “누가 불쌍히 여기랴”며 반문하고 있다.
. 坐覺村飢語不囂(좌각촌기어불효): 두목(杜牧)의 「서울(京)에 가다가 처음으로 변구에 들어, 새벽 경치를 즉흥적으로 짖다(赴京初入汴口, 曉景卽事)」에서의 “못은 너르나 새는 늦게 날아오고, 마을에는 기근이 들었으나 사람 말소리는 이르다(澤闊鳥來遲, 村飢人語早)”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두목의 시구를 역용(逆用)하고 있다.
. 千片(천편): 분분히 날리는 눈 조각.
「해제」
28세(嘉祐8년, 1063년) 12월 14일에 지었다. 밤눈이 내리는데 동파는 흥이 일어, 다음날 새벽 남계로 가 눈을 감상하고 술 마시며 종일 서성이다가, 집이 부서지고 배고픔에 허덕이는 민가의 모습을 보고는 흥이 떨어진다. 저녁 갈가마귀 만이 작자의 흥을 돋운다. 시에서 맑고 그윽한 가운데 황량한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王王)
* 저자소개: 蘇東坡 (소동파)
소동파(蘇東坡: 1036-1101)는 본명이 소식(蘇軾)이며,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그는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 예술가로서도 유명하지만, 천재적 자유정신과 재주, 꾸준한 노력,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으로 훌륭한 문학작품을 창작해낸 대문호로서 더욱 알려졌다.
자유정신과 이성적 사유, 그리고 개성을 중시했던 북송의 문화와 문학정신, 시대정신이 그에게 역력히 구현되어 있다. 문학의 경우,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이다.
또한 그는 경학(經學)․고고학․음식 만들기․술의 제조․차(茶)의 품평․서예․그림, 그리고 예술감식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 역주자 소개
曹圭百 (조규백)
韓國外國語大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成均館大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그리고 民族文化推進會 국역연수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 제주교대 강사를 역임했다.
現在 濟州觀光大學 중국어통역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실적으로는 中國의 文豪 蘇東坡(역주), 소동파산문선(역주), 제주관광중국어회화(상, 하), 史記世家(下)(공역), 千字文註解(前) - 아들을 위한 천자문 등의 역저서와, <詩經․鄭風 愛情詩 小考>, <蘇軾詩硏究>, <出仕와 隱退間의 갈등과 그 解消 - 蘇軾詩의 한 斷面>, <陶淵明에의 同一化樣相과 陶詩의 創造的 受容 - 蘇軾詩의 한 斷面>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