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사선 蘇東坡詞選 73. 醉翁操 취옹(醉翁)만이 취중에 자연의 음악인줄 아네. 달 밝고 바람 이슬 아름다워
사진 이수형
73. 醉翁操
낭야(瑯琊)의 깊은 계곡은 산천이 아름답고 샘물소리가 텅 빈 시내에 울려 마치 음악회에 들어 온 것 같다. 취옹(醉翁: 歐陽修)은 이것을 좋아하여 술을 들고 가서 그 소리를 들었는데 번번이 기분이 흐뭇해져서 돌아가기를 잊었다. 그가 (그곳을) 떠난 지 10여 년 만에 호기심이 많은 심준(沈遵)이라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서 놀다가 거문고로 그 소리를 묘사하여 <취옹조(醉翁操)>라고 하였다. 그 리듬이 시원스럽고 선율이 아름다워서, 거문고를 아는 사람들이 출중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곡조만 있고 가사가 없었다. 취옹이 비록 이를 위하여 가사를 짓기는 했으나 거문고 소리와 부합하지 않았다. 또 (취옹은) 초사(楚詞)에 의거하여 <취옹인(醉翁引)>을 지었고, 호사자(好事者)가 그 가사에 맞추어 곡을 짓기도 했는데, 비록 풍도에는 대략 어울릴지라도 거문고 소리가 가사의 제약을 받아서 자연스럽지 못하였다.
그 뒤 30여 년이 지나, 취옹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심준(沈遵) 역시 죽은지 오래되었다. 여산(廬山)의 옥간도인(玉澗道人) 최한(崔閑)은 거문고에 특별한 재주가 있었는데, 이 곡조에 가사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 소리를 악보로 삼아서 동파거사에게 가사를 보충해 달라고 청했다
낭랑한 소리
맑게 에워싸는데
누가 연주하는가.
고요한 산을 울리고
말이 없네.
취옹(醉翁)만이 취중에 자연의 음악인줄 아네.
달 밝고 바람 이슬 아름다워
사람 잠들지 못하고
삼태기 메고 산 앞을 지나며
말하길, “생각함이 있는 듯하구나 이 현인이여.”
취옹(醉翁)이 읊조리니
소리가 흐르는 샘물과 화답하네.
취옹이 떠나간 후
공연스레 아침에 읊고
밤에 원망하였지.
산도 때로는 민둥민둥하고
냇물도 어떤 때는 소용돌이치네.
생각함에, 몇 년 되지 않는 사이에
취옹은 지금 나르는 신선이 되었다네.
이 뜻이 인간 세상에 있어
시험삼아 두세 가락 타는 것을 듣네.
瑯琊幽谷, 山川奇麗, 泉鳴空澗, 若中音會. 醉翁喜之, 把酒臨聽, 輒欣然忘歸. 旣去十餘年, 而好奇之士沈遵聞之往游, 以琴寫其聲, 曰<醉翁操>, 節奏疏宕, 而音指華暢, 知琴者以爲絶倫. 然有其聲而無其辭. 翁雖爲作歌, 而與琴聲不合. 又依楚詞作<醉翁引>. 好事者亦倚其辭以製曲. 雖粗合韻度, 而琴聲爲詞所繩約, 非天成也. 後三十餘年, 翁旣捐館舍, 遵亦沒久矣. 有廬山玉澗道人崔閑, 特妙於琴. 恨此曲之無詞, 乃譜其聲, 而請東坡居士以補之云
瑯然.
淸圜.
誰彈.
響空山,
無言.
惟翁醉中知其天.
月明風露娟娟.
人未眠.
荷蕢過山前.
曰有心也哉此賢.
醉翁嘯詠, 聲和流泉.
醉翁去後, 空有朝吟夜怨.
山有時而童巓.
水有時而回川.
思翁無歲年.
翁今爲飛仙.
此意在人間.
試聽徽外三兩絃.
[주석]
. 瑯琊: 낭야산. 저주(滁州) 서남 10리에 있다.
. 沈遵(심준): 구양수, <醉翁引>: “태상박사 심준(沈遵)은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선비이다(太常博士沈遵, 好奇之士也).”
. 捐館舍: 捐館. 살던 집을 버린다는 뜻으로 死亡의 敬稱.
. 瑯然: 낭랑하다. 옥 소리를 가리킨다. 琅: 옥돌 랑. 금옥소리.
. 圜(환, 원): 두를 환, 에울 환. 둥글 원. = 圓.
. 淸圜: 거문고 소리가 청량하고 부드럽다.
. 娟娟(연연): 아름다운 모양.
. 荷蕢過山閃. 曰有心也哉此賢:
論語․憲問, [공자께서 위나라에 머무르실 때, 경쇠를 치고 계셨다. 삼태기를 지고 공자의 문전을 지나던 사람이 있었는데, 말하기를 “천하에 마음이 있도다. 경쇠치는 소리에”라고 하였다. 이윽고 말하기를 “비속하도다, 저 딱딱한 소리여. 자기를 몰라주면 그만 둘 뿐이니, ‘물이 깊으면 잠방이를 입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 걷고 건너라’ 했느니라.”라고 하였다. 공자는 말씀하시기를 “과감하게 세상을 잊었구나. 그렇게 산다면 어려운 게 없나니라”.(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旣而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己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子曰, “果哉! 末之難矣.”)]
. 童巓: 초목이 나지 않는 산꼭대기.
. 回川: 냇물이 소용돌이치다.
. 徽(휘): 거문고 줄을 매는 줄. 거문고 한 마디. “揮”와 통한다. 탈 휘. 거문고를 타다.
[창작시기] 47세(元豐5년 壬戌, 1082) 12월 황주(黃州)에서 지었다.
* 저자 소개
소동파
소동파(1036-1101, 음력)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북송(北宋)은 중국의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로 자유스런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였으며, 유불도(儒佛道)사상이 합류(合流)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의 문학영역은 물론 서법, 회화, 의학, 경학(經學),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유가(儒家)임을 자부하면서도 도가와 불가사상에 대해서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동파는 송시(宋詩)의 전형적인 특성을 확립시킨 시인이며, 산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고, 삶의 지혜를 밝혀 낼 만큼 깊으며, 자유분방하다. 또한 신선함, 통찰력, 그리고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고가 깊고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있으며 기지가 있다. 사대부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유불도 사상이 합류되어 있고, 인생철리가 함유되어 있다. 거시적 미시적 안목을 두루 갖춘 그의 문학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 역자 소개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