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시선 사환전기(仕宦前期) 二. 봉상첨판(鳳翔簽判) 시절 홀로 야윈 말 타고 새벽 달빛 밟고 가는 그대 뒷모습
사진 이수형
二. 봉상첨판(鳳翔簽判) 시절
1. 신축년 11월 19일, 정주 서문 밖에서 자유와 헤어진 뒤, 말 위에서 시 한 편을 지어 그에게 부친다
辛丑十月十九日, 旣與子由別於鄭州西門之外, 馬上賦詩一篇寄之
술도 아니 마셨거늘 어찌 취한 듯 얼떨떨할까!
내 마음 이미 말 타고 되돌아가는 그대를 쫓고 있네.
돌아가는 그대는 그래도 아버님을 생각하겠지만
난 지금 이 적막한 가슴을 무엇으로 달래리오.
높은 곳에 올라 머리 돌려 바라보니 언덕이 가려서
그대가 쓴 검은 모자만이 언뜻언뜻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심한 추위에 네 얇은 가죽외투가 마음에 걸리누나.
홀로 야윈 말 타고 새벽 달빛 밟고 가는 그대 뒷모습.
왕래하는 행인들은 노래하고 집에 있는 이들은 즐거운데
나만 유독 서글퍼한다고 머슴이 의아해 하네.
나 역시 안다네, 인생행로에 결국 이별이 있음을.
다만 세월이 훌쩍 떠나가 버릴까 두렵다네.
아우여 기억하는가? 예전 어느 밤 차가운 등불아래 서로 마주하던 때를.
밤비 내리던 소슬한 그 정경을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그대는 우리의 옛 언약을 잊지 않았겠지?
높은 벼슬에 마음 뺏기지 말자고 했던!
不飮胡爲醉兀兀, 此心已逐歸鞍發.
歸人猶自念庭闈, 今我何以慰寂寞.
登高回首坡壟隔, 但見烏帽出復沒.
苦寒念爾衣裘薄, 獨騎瘦馬踏殘月.
路人行歌居人樂, 童僕怪我苦悽惻.
亦知人生要有別, 但恐歲月去飄忽.
寒燈相對記疇昔, 夜雨何時聽蕭瑟.
君知此意不可忘, 愼勿苦愛高官職.
(권3)
「주석」
. 辛丑(신축): 인종(仁宗) 가우(嘉祐)6년, 1061년. 당시 동파는 첨서봉상부판관(簽書鳳翔府判官)으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이었다. 당시 아우 소철(蘇轍)은 상주추관(商州推官)에 임명되었으나 부친 소순(蘇洵)이 경사(京師: 북송의 수도 변경汴京)에서 예서(禮書)를 편수(編修)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사에 머물러 부친을 시봉(侍奉)하였다. 소철은 정주(鄭州)까지 동파를 전송하고 경사(京師)로 돌아갔다. 일설에 정주서문(鄭州西門)은 변경(汴京) 서성(西城)의 신정문(新鄭門)이 있어 속칭 정문(鄭門)이라고 하는데, 이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 子由(자유): 소철(蘇轍), 자(字)는 자유(子由).
. 兀兀(올올): 술에 취해 머리가 멍한 모양.
. 庭闈(정위): 부모가 거주하는 곳. 여기서는 부친 소순(蘇洵)을 가리킨다.
. 殘月(잔월): 새벽달. 새벽녘까지 남아 있어 빛이 희미해진 달. 거의 다 져 가는 달. 그믐달.
. 居人: 집에 거주하는 사람.
. 疇昔(주석): 이전. 옛날.
. 夜雨何時聽蕭瑟(야우하시청소슬): 동파의 자주(自注)에 “일찍이 비 내리는 밤에 침상을 마주하고 정답게 지내자는 언약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嘗有夜雨對床之言, 故云爾).”
당(唐) 위응물(韋應物)의 「전진과 원상에게 보이다(示全眞元常)」시에 “어찌 알았으리요, 눈보라 몰아치는 밤에, 다시 여기서 함께 침상을 마주하고 밤을 보낼 수 있게 될까(寧知風雪夜, 復此對床眠).” 동파 형제는 회원역(懷遠驛)에서 위응물(韋應物)의 이 시를 읽었는데, 이 구에 이르러, “서글피 느낀바가 있어 일찌감치 은퇴하여 한거(閑居)의 즐거움을 갖기로 약속했다(惻然感之, 乃相約早退爲閑居之樂).”(蘇轍, 「逍遙堂會宿」詩序)
「해제」
26세(嘉祐6年, 1061년)에 지었다. 이는 동파가 첫 임지인 봉상(鳳翔)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경사(京師: 지금의 개봉開封)로부터 멀리 떨어진 정주(鄭州) 서문 밖까지 전송 나온 아우 소철(蘇轍)과 첫 이별을 하며 마상(馬上)에서 지은 시이다.
이 시는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제1단락(1-8구)은 이별 직후 심화된 격절심정의 토로이다. 첫 이별로 인해 술도 안 마셨는데도 취한 듯 얼떨떨함 속에 앞길을 향해 차마 떠나지 못하고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적막감을 해소하려고 언덕에 오른다. 뒤돌아보니 자신(소동파)을 바래다주고 되돌아가는 아우 소철의 검은 모자만이 아스라이 언덕에 가려 보이다 사라지다 한다. 홀로 야윈 말 타고 새벽달빛을 밟고 되돌아가는 아우의 뒷모습을 보며, 혹심한 추위에 얇은 아우의 옷이 마음에 걸리는 농도 깊은 형제애가 나타난다. 이별로 인해 고양된 격절감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出復沒)’ ‘얇은 가죽옷(裘薄)’ ‘홀로 야윈 말 타고(獨騎瘦馬)’ ‘새벽 달빛(殘月)’ 등의 시어와 그 행간에 배어나고 있다.
제2단락(9-12구)에서는 이별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이별로 인한 비애의 원인을 서술하고 있다. 9, 10구의 머슴의 말은 이별의 상념으로부터 현실로의 전환계기가 된다. 이어서 이별을 인간의 일상사라는 객관적 인식으로 전환시켜 격앙되는 비애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이할 수 없는 세월의 빠름 때문에 언제나 다시 아우와 만나게 될 것인가를 염려하고 있다.
제3단락(13-16구)에서는 아우와의 지난 일을 회상하며, 훗날 높은 벼슬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은퇴하자던 약속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다. 과거회상을 통해 순수성을 지켜 고관직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 입신양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지양하자는 의지의 표명이다. 26세에 지은 이 시에서 벌써 인생역정을 어느 정도 경험한 듯한 성숙미를 노출시키고 있다.
소동파시선 –
사환전기(仕宦前期)
* 저자 소개
소동파
소동파(1036-1101, 음력)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북송(北宋)은 중국의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로 자유스런 사고와 개성을 중시하였으며, 유불도(儒佛道)사상이 합류(合流)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의 문학영역은 물론 서법, 회화, 의학, 경학(經學),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유가(儒家)임을 자부하면서도 도가와 불가사상에 대해서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동파는 송시(宋詩)의 전형적인 특성을 확립시킨 시인이며, 산문에 있어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고, 삶의 지혜를 밝혀 낼 만큼 깊으며, 자유분방하다. 또한 신선함, 통찰력, 그리고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고가 깊고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있으며 기지가 있다. 사대부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유불도 사상이 합류되어 있고, 인생철리가 함유되어 있다. 거시적 미시적 안목을 두루 갖춘 그의 문학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 역자 소개
조규백(曹圭百) sudongpo@hanmail.net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중문과 방문학인(訪問學人), 복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고적연구소(古籍硏究所) 연구학자(硏究學者)를 역임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중국고전을 배웠으며, 이어서 한학자 고(故) 연청(硏靑) 오호영(吳虎泳) 노사(老師)께 한학(漢學)을 사사하였다. 성균관대, 숭실대의 강사와 제주관광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