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

소동파사선 53. 햇빛 나는데 서산에는 비 내리니 南歌子(日出西山雨)

koreafood 2019. 11. 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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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수형 

소동파사선 53. 햇빛 나는데 서산에는 비 내리니 

南歌子(日出西山雨) 


앞 운(韻)에 화답하여


햇빛 나는데 서산에는 비 내리니

흐렸다가 또 맑게 갠다.

울멍줄멍한 산 깊숙한 곳에서 청명절 지내니

오색 밧줄 발판의 그네를 타는 

날씬한 여인은 보이지 않는구나.


온종일 뽕밭을 걸어다녀도

눈이 맞는 사람은 없네.

또 새로운 시구를 옥돌처럼 다듬나니

나는 세상의 한가로운 사람

이처럼 한가로이 다니네.


和前韻


日出西山雨, 無晴又有晴.

亂山深處過淸明.

不見綵繩花板․細腰輕.


盡日桑野, 無人與目成.

且將新句琢瓊英.

我是世間閒客․此閒行.


[주석]


. 題序: “和前韻”: 원래 <南歌子>(雨暗初疑夜)의 뒤에 배치되어 있었다.

一作, “劉行甫가 餘姚로 부임함을 전송하며(送劉行甫赴餘姚)”

. 綵繩花板: 그네뛰기 놀이이다.

. 細腰: 허리가 날씬한 여자.

. 目成: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눈빛으로 서로 의사가 통한다. 여기서는 눈을 마주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 琢瓊英: 옥과 같은 아름다운 돌을 다듬다.


[창작시기] 47세(元豐5년, 壬戌, 1082) 3월에 황주(黃州)에서 지었다.


[해제]

이 사는 전혀 송별사 같이 느껴지지 않고 마치 한가로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자연을 벗삼는 나그네가 쓴 기행시 같다. 이것은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를 깨달아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고, 햇빛이 날 때가 있으면 비가 올 때가 있음은 물론 햇빛과 비가 공존할 수 있다는 자연현상을 통하여 인생도 이와 같음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떠나감은 마치 한가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과도 같았던 모양이다.(柳)  


54. 南歌子


다시 앞의 운(韻)을 사용하여     


술병을 차고 산 속에서 비를 뚫으며 길을 재촉하다가

비 갠 저녁나절에 옷 입은 채 잠들었네.

새벽 알리는 종고(鐘鼓) 소리 울리는 줄 모르고

꿈속에서 훨훨 나비 되어 나르니 

온 몸이 가뿐하여라.


늙어감에 재주는 다 없어졌는데

고향에 은거할 뜻은 아직 이루지 못했네.

밭 구하고 집을 얻어 큰 뜻 품은 호걸들을 비웃으리라.

나는 본시 호숫가의 모랫길을 사랑하니

진흙길을 다니는 것 피할 수 있으리.

   

再用前韻 

   

帶酒衝山雨, 和衣睡晩晴.

不知鐘鼓報天明.

夢裏栩然蝴蝶․一身輕.


老去才都盡, 歸來計未成.

求田問舍笑豪英.

自愛湖邊沙路․免泥行.


[주석]


. 衝山雨: 산에서 비를 맞다. 여기서는 산에서 비를 맞으며 길을 재촉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夢裏栩然蝴蝶: 󰡔莊子․齊物論󰡕, “지난 어느 날, 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것이 확실히 나비였다. 스스로 유쾌하여 자신이 장주인 것을 몰랐다. 그러나 조금 뒤에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틀림없이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가?(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 胡蝶之夢爲周與?)” 栩然: 생동스럽고 활발한 모양.

. 求田問舍笑豪英: 水調歌頭(安石在東海) 註 참조.

         

[창작시기] 47세(元豐5년, 壬戌, 1082) 3월에 황주(黃州)에서 지었다.


[해제]


지방관의 생활을 오래 하였지만 우울하거나 비탄에 잠기지 않고 오히려 달관적인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상편은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고사를 인용하여 세속을 벗어나 자신이 자연 속에 물아일체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편에서 󰡔三國志․魏書․陳登傳󰡕의 고사를 사용하여, 속세의 명리에 집착하는 호걸들을 비웃어 버리고 있다. 끝구의 “泥行”은 세속의 명리를, “沙路”는 자연의 진리를 각각 비유하는데, 동파는 달관적인 태도로 “沙路”를 지향하고 있다.(申)



* 저자소개: 蘇東坡소동파(蘇東坡: 1036-1101)는 본명이 소식(蘇軾)이며,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그는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 예술가로서도 유명하지만, 천재적 자유정신과 재주, 꾸준한 노력,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정신으로 훌륭한 문학작품을 창작해낸 대문호로서 더욱 알려졌다.자유정신과 이성적 사유, 그리고 개성을 중시했던 북송의 문화와 문학정신, 시대정신이 그에게 역력히 구현되어 있다. 문학의 경우,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이다.또한 그는 경학(經學)․고고학․음식 만들기․술의 제조․차(茶)의 품평․서예․그림, 그리고 예술감식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 역주자 소개曹圭百조규백 韓國外國語大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成均館大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臺灣大學 중문과 訪問學人, 중국 復旦大學 중문과 박사후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중국 四川大學 古籍硏究所 硏究學者를 역임했다. 그리고 民族文化推進會 국역연수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 제주대, 제주산업정보대, 제주교대 강사를 역임했다.現在 濟州觀光大學 중국어통역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연구실적으로는 󰡔中國의 文豪 蘇東坡(역주), 소동파산문선(역주), 제주관광중국어회화(상, 하), 史記世家(下)(공역), 千字文註解(前) - 아들을 위한 천자문 등의 역저서와, <詩經․鄭風 愛情詩 小考>, <蘇軾詩硏究>, <出仕와 隱退間의 갈등과 그 解消 - 蘇軾詩의 한 斷面>, <陶淵明에의 同一化樣相과 陶詩의 創造的 受容 - 蘇軾詩의 한 斷面>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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