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 산, 서대문 안산 등산코스
서대문 안산에서 바라본 북한산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 자락길은 노인, 어린이, 유아, 임산부, 장애인 등 보행약자도 안산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경사가 완만한 숲길 입니다. 특히, 휠체어 및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무장애 숲길 구간입니다
2024년 9월 3일 화요일 오후 12:53
아현역을 지나 북아현동으로 등산로 진입
2024년 9월 3일 화요일 오후 1:13 등산 시작
전망대 2024년 9월 3일 화요일 오후 1:28
2024년 9월 3일 화요일 오후 1:46
서대문 이음길은?, 안산, 인왕산, 북한산, 백런산, 긍동산을 연결하는 총 20.9km의 5코스로 이루어진 생태순환길로 아름다운 자연생태를 탐방하고, 서대문의 주요 역사 • 문화 스토리를 둘러볼 수 있는 곳입니다. 또 각 산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홍제천길(5.9km)로 이어져 있어, 언제든지 쉽게 찾아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된 길입니다.
2024년 9월 3일 화요일 오후 2:59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 'Former Seodaemun Prison, Seoul')는 일제 통감부가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1907년에 오늘날의 서대문구 지역에 건설하여 1908년 10월에 문을 연 감옥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방 후에는 주로 서울 구치소라 불리며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서울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87년 10월에 폐쇄되었고, 그 후로 역사성과 보존가치 등을 고려하여 일부 시설을 철거한 뒤 나머지 시설들이 1988년 2월 27일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98년 11월 5일부터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가 관리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재개장하였으며, 1992년부터는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독립공원의 주요시설로 기능하고 있다.
유관순열사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음력 11월 17일) 중남 목천군,이동면 처량리(현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2)에서 아버지 유증권과 어머니 이소제사이의3남 2년 중 둘째 달로 태어났다.
1919년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이던 유관순 열사는 서명함, 김복순, 김화자 국한축과 함께 5인 결사대를 결정하여 3월 1일 탑골공원 만세운동과 3월 5일 대한문 앞에서 망곡보뜻을 한뒤 남대문역현 서울역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0일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내려온 유열사는 학교와 교회, 그리고 유리 등을 방문하여 만체운동을 협의하고 4월 7일 아우내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직접 제작한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시위를 평화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의해 이날 시위 현장에서 유열사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19명이 피살되고, 30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유열사는 시위 주동자로 제포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 징역형을 받고 경성복심법원에서 당시 소요리의 최고형인 3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운형무소에 수길 중에도 끊임없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자 지하 감방에 가두고 모진 고분을 하였지만 끝가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유 열사는 제품 당시 당한 부상과 계속되는 고문으로 립을 보지듯한 자 1920년 6월 29일 오전 8시 20분 서태문 형무소의 어두운 감방에서 순국했다
유 열사의유해는 1920년 10월 14일 이태원공동모지에 안장되었다가 1936년 이태원공동모지가 국사시설 및 주택지로 이장과정에서 무엇고 분모로 화장 후회재 양우리공원에 합장되어 있다.
1962년 3월 1일 건국은장단장(서분 3등급)에서 2019년 3월 1일 건국훈장대한민국장(서울 1등급 으로 승격 주서하였다.
서울 독립문(서울 獨立門, 영어: Dongnimmun Arch, Seoul)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부터 1898년 사이에 영은문 주초 부근에 서재필과 독립협회의 주도로 세워진 뒤, 1963년에 대한민국의 사적 제32호로 지정된 건축물이다. 현재의 위치는 1979년 성산대로 공사 과정에서 영은문 주초와 함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근린공원 내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